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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Jul 25. 2024

하루 하루 발자국을 낸다는 것

발을 동동거리며...

 우울증이 재발하고 나서 내 삶은 이전보다 더 무너졌다. 더 이상 자책하고 싶지 않았지만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것을 잘 알았지만 한동안은 그런 생각들이 자동으로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창피하고 부끄러웠다. 내 모습을 마주하기 싫었다. 고등학생 때 어떻게 이겨냈는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에 썼던 일기를 뒤지며 옛 방법들을 시도해서 내 마음속의 어둠을 물리치려고 했다. 하지만 먹히지 않았다. 재발은 생각보다 더 무서운 녀석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로 발을 동동거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 주변에 대한 생각이 무뎌졌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공간, 사람들에 대한 감각이 무뎌지면서 나는 점차 내 신체감각도 잃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자해 후 살아있음에 감사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과 자기 연민에 빠져 말라가는 눈물과 체념은 섞여 내 심장을 조였다.


  실제로 가슴이 조이는 듯한 신체화 증상을 겪으면서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러다 나는 감정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마음에 드는 노트를 사서 마음먹은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감정일지를 쓰고 있다. 감정일지를 쓰는 법은 어렵지 않다. 시간별로 내가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에 대해 쓰면 된다. 며칠 동안은 부정적인 얘기밖에 없던 일지가 점점 긍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글씨도 점점 예뻐지고 내용도 더 밝아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때때로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기분이 왔다 갔다 하는 날도 있다가 어떨 때는 약의 부작용으로 고생했던 날도, 간단한 일상도 힘든 날도 존재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감정일지를 쓰고, 요가를 다니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대학에 대한 정보를 찾는다. 다시 대학에 가기로 했고 진로도 다시 정했다. 내일 배움 카드를 신청해 컴퓨터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명상을 시도하며 읽은 책 내용들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실천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고 있다. 그 중 요즘 제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요리다. 레시피를 따라 가다가 중간에 변형해서 나만의 요리처럼 만들어 놓고는 '역시 나야' 이러는 게 퍽 웃기다.


 한 번은 울면서 정신과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저 우울증 재발한 거니까 이제 약 평생 먹어야 하나요?"

선생님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으셨다. "아니, 너 별로 그렇게 심하지 않으니까 우울증 걸렸다고 약 평생 먹을 필요 없어." 그 말에 나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렇죠? 저 나을 수 있겠죠?" 알고 있다. 그 답은 나만 안다는 사실을. 하지만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뭐라도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확신한다. 이 위기를 기회로 아주 잘 활용하면 나는 어마어마한 성장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이 상태에서 욕심이 많아지는 나도 웃기지만 어차피 이렇게 자빠진 거, 무엇을 시도하든 죽기보다 더 하겠냐는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감은 내 폐 깊숙이 쌓여서 한숨으로 방출되었다. 거절당하는 게 싫어서, 지적받는 게 싫어서 아무것도 도전하지 않는 것보다는, 자책하며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리며 울고만 있는 것보단 지금이 낫다. 


 그리고, 나는 아주 잘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세상 누구가 나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도, 나만은 나 자신을 향해 미소 지으며 내 속도대로 삶을 살아가면 된다는 사실을 또다시 깨달았다. 처음 우울증에 걸렸을 때는 체득이 되지 않고 경험만 한 것이었다. 이는 신호와도 같다. 나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 근본을 바꿔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내 자신과 한 약속은 더 이상 미루지 않기로 결심하고 하루하루 작은 것들을 해나가고 있다. 그런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 단점 투성이인 내가 유일하게 가진 장점은 힘들 때 도움을 청할 줄 안다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과정을 즐기고 끝까지 가 봐야 한다는 게 내가 얻은 깨달음이다. 조급하다고 불안해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 남과 나를 비교하며 눈치보기엔 내가 내 삶의 주인인데 말이 안 되는 소리다.


 무엇보다 나는 이제 지혜롭게 살고 싶다. 21살의 나를 본 31살의 나는 이 시기를 미소 지으며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를 이해해 주신 할머니의 말씀을 떠올리며 나는 스스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오뚝이야, 의사 선생님이 너를 고쳐줄 수는 없어. 약이 너를 완전히 낫게 해 줄 수도 없어. 결국엔 스스로 이겨내야 해.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는 게 스스로를 사랑해 주는 거야." 나는 울면서 말했다. "그게 제겐 제일 어려운 일이에요."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들 때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요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더 이상 우울한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가고 싶었다. 뛰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까 내 느린 걸음이 점점 빠른 걸음으로 발전해서 결국에는 결승선에 다다르길 바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이 아님을 알고 있다. 내겐 아직 뭐든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이 남아있고, 그것은 내게 희망이 있다는 것에 대한 증거니까. 


  이 터널의 끝에 뭐가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음만 조급한 나는 이제 나 자신에 초점을 두고 살아가기로 했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어찌 되었든 그게 이득이기 때문이다. 미래에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이때를 잠시 펼쳐보고 책장을 덮는 내가 되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성공한 사람들이 말한다. 아직은 확신이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하루하루 알차게 사는 것이 더 이득이니 나는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살기로 마음먹었다. 나아가지 못할 때면 마치 당나귀가 가게 하기 위해 당근을 나뭇가지에 매어 코 앞에 흔들며 나아가는 나그네처럼 나 또한 나 자신을 어르고 달래며 조금씩 나아간다. 이런 나 자신이 가끔 웃기기도 슬프게도 느껴지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조금 더 배운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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