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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Jul 25. 2024

소녀와 소년이 만난 그날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다

  옛날에 한 소녀를 너무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 소년은 자신이 사는 세계로 소녀를 데려오고 싶어 했다. 소녀는 소년을 만나면서 자연스레 그에게 끌리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같이 가는 도중에 소녀는 물었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거야?"


 소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가 지내던 세계로. "


소녀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고 있는 게 맞아? 내 눈에 보이는 것은 계속 가라앉는 바닥과 어둠뿐인데."

 

 소년은 소녀를 꽉 안으며 말했다.


 "내 세계는 네 마음 깊숙한 곳에 있어. 내 이름은 우울증이야."

 

 소녀는 두려움을 느끼며 그를 뿌리쳤다. 


 "싫어,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데려다줘."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돼, 이미 늦었어. 나는 너를 원해. 나는 너의 신체, 영혼, 등 너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싶은 만큼 너를 사랑해."


 소녀는 가라앉은 바닥에서 지상으로 올라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벽이 너무 미끄러워 계속 떨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울면서 빌었다.


 "제발 나를 놓아줘, 내가 이렇게 부탁할게."


 소년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더 세게 끌어당겼다. 


 "나와 영원히 함께하자. 그러면 네가 그토록 지겨워하던 지상의 세계에서의 고통은 잊을 수 있어."

 

 소녀는 홀린 듯 소년의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포기한 듯 가만히 있었다. 소년은 소녀를 더욱 세게 끌어 앉았다. 몇 날 며칠이 지나자 숨을 못 쉴 정도로 힘들어진 소녀는 소년을 뿌리치며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려 발버둥 쳤다. 이를 악물고 위로 올라가던 소녀는 자신의 발목을 잡는 소년에게 소리쳤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제발 좀 떨어져!!"


 하지만 소년은 소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소녀는 심호흡을 하며 내려와 소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를 좋아하지 않아. 그러니 더 이상 나를 가두려 한다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야."


  소녀는 몸의 긴장을 풀고 머릿속으로 외쳤다.

 

 '나는 잘할 수 있다. 나는 포기하지 않아, 나는 이 괴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야. 나는 나 자신을 믿어.'


이윽고 그녀는 소년을 향해서 이 말들을 수백 번, 수천번 외쳤다. 그러고는 다시 벽을 타고 올라가며 그 말들을 수천번 수만 번 외쳤다. 간신히 지상을 보게 된 순간, 소녀는 주변 사람들이 보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모두 소년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소녀는 소년에게 다시 잡히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한 그녀는 방문을 닫고 잠시 생각하다가 소년을 막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녀는 소년을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얼굴을 가진 어른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어른을 붙잡고 도움을 청했다. 어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다. 소녀의 표정은 다시 밝아지기 시작했고, 어른에게서 배운 여러 가지를 하나하나 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년을 다시 만나러 가 그를 똑바로 보고 눈을 감았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소년을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리며 긍정적인 말들을 퍼부었다. 그러자 소녀의 주위로 여러 가지 색의 빛이 쏟아져 내렸다. 알록달록한 색깔들 중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소녀는 미소 지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자, 네 자리야, 어서 들어가. 이때까지 갈 곳이 없어서 외로웠던 거잖아. 저 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함께할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소년은 잠시 고민하더니 수많은 빛들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러자 주위가 조용해지고 소녀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 옷차림 등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여전히 몸이 무겁고 마음이 아팠지만 소녀는 한발 한발 걸어 나가며 하늘을 보고 웃었다. 


 "난 이제 그 소년을 다스릴 줄 알아. 더 이상 휘둘리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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