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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긋지긋한 놈을 향한 선전포고

우울증과 끝을 보기로 결심한 날

by 몽도리

가끔씩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만 같다. 예전엔 우울증에게 '레이브'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프랑스어로 '꿈, 공상, 희망'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는 그 아이를 만나고 싶지 않다고 소설도 썼지만, 그 아이는 더 강력해져서 돌아왔다. 내가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 내가 그 소년과 헤어졌을 때 소년이 슬퍼하는 장면을 넣었었다. 소년은 다시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것일까. 제발 내 발목을 놓아주길 바랐지만 이제는 내 모든 걸 가져가려 했다. 나는 아직 지지 않았다며 여러 가지를 하기 시작했고, 그러기까지 내 기준에서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은 우울증에게 대적할 수 없다. 어느 정도 회복되어 빨리 빠져나오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른다. 상대적으로 느려진 신체와 정신 때문이다. 타인과의 비교는 독이며 스스로 방법을 찾으며 때론 도움도 구해야 한다.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만 순식간에 그건 그저 나만의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의문을 품게 된다. 도대체 나는 무엇과 싸우고 있는가. 나는 현실의 문제들과 싸우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레이브는 나를 죽이려 든다. 그렇다면 나는 이 소년을 결국 어르고 달랠 수 있을까. 때로는 나를 놓아달라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 강하게 소리친다.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줄다리기를 하는 나는 지쳐가지만 절대 다시는 쉽게 승리를 내어주지 않으려 한다. 내 쪽으로 넘어오게 되는 순간에, 서열을 정확히 해둘 것이다. 레이브, 미안하지만 나는 너랑 친구는 못 하겠다. 그러니 너는 내게 복종해. 내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어 나의 발전에 도움을 주며 다른 좋은 감정들과 함께 어울리는 법을 배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네가 있을 자리조차 산산조각 내버릴 거야.


어떤 게 자신에게 유리할지 녀석도 알 것이다. 또다시 찾아왔다는 것은 저번에 기승을 덜 부렸다는 것이겠지. 토미리스 여왕은 매번 자신에게 불행이 닥칠 때 그 불행과 싸워 결국에는 이겼다. 나도 더 이상당하고 살지 않겠다. 두려움과 불안감과 슬픔이 섞여 나를 찌르는 녀석을 잡아 죽여야겠다. 죽지 않는다면 생포해서라도 내게 굴복시키리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내 인생을 통째로 가져가게 둘 수 없다. 지금부터 전쟁을 선포한다. 함께 가려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내 삶은 흘러가겠지. 내가 원하는 건 놈의 위를 밟고 일어서 20배 이상은 성장하는 것이다. 수천번을 넘어져도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며, 내게 부족한 점, 레이브가 내게서 뺏어간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되찾아 올 것이다. 결국 복종시키고 토미리스 여왕처럼 다시 올라오려고 발악하기 전에 목을 따 피에 적시리라.


이런 다짐을 하며 나는 내 영어이름을 Jessica에서 penelope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이유는 단순변심일지도 아니면 이전의 나보다는 새로운 모습의 나로 전투에 임하겠다는 투지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주체는 나고, 앞으로 나는 penelope, 또는 penny. 한편으로는 '몽도리 작가'이기도 하다. 레이브를 내 의지로 이겨낼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롤모델은 작가 '노경원', 아티엔 바나나의 '르네쌤.' 그리고 토미리스 여왕이다. 두려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될 때까지 가볼 생각이다. 우울증과 같이 살아가기는 개뿔, 나는 그럴 인내심이 없다. 어차피 한 번뿐인 내 인생, 똑바로 제대로 살면서 우울하지 않은 여생을 보내보도록 하겠어. 전사와 같은 자세로 임해 나간다면 내 스트레스도, 우울도 내게 닥쳐오는 작고 큰 시련들도 다 별 것 아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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