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이 바뀐 그 순간
난 내 우울증이 너무 싫었다. 고등학생 때 처음 겪었을 때도 이건 내가 아니라며 발버둥 쳤었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나는 성숙해졌다. 내게 필요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호전됐다고 믿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내 우울증은 재발했고, 재발은 너무 무서웠다. 종교를 안 믿던 나는 절을 찾아가 소원을 빌고 때론 밖에서 개인정보를 모으고 있는 심리 상담사에게 내 신상을 내주었다. 학습을 위한 금전적인 사기도 당하며, 그렇게 인생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니체가 한 말을 되새겨 보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할 뿐이라는 메시지.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살아있다. 그리고 나는 심리학 책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 행동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이것저것 하기 시작했다.
조금은 호전됐지만 의욕이 예전 같지는 않았다. 행복했다가 우울해지기를 반복하는 내 감정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시달리고 난 뒤, 어느 날, 나는 이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내가 우울증을 두 차례나 겪고 아파하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종의 신의 계시라고 믿은 것이 아니다. 나는 무교이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뿐, 중학교 때 들어갔던 상담 동아리의 장으로써 활동했던 시기, 남을 관찰하고 그들의 기분을 나도 모르게 유추하고 있거나 모든 것에 다 예민해서 우울질로 느껴지는 내 성격까지, 다 단점이라고 여겼지만 장점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단점은 역이용하고, 장점은 있는 대로 키워서 나처럼 심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겪는 모든 일을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하나하나 기록해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내게서 발생하는 감정들을 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고찰하고 연구해 보기로 했다. 나중에는 언어 배우는 것을 사랑하는 내 기질을 이용해 해외에서 연구도 하고 싶다. 처음으로 직업이 아니라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타인을 돕는 일. 항상 남의 것은 잘 도와주고 내 것은 잘 안되던 경험을 생각해 보면 나는 남의 눈치를 심하게 보기도 하지만 배려하는 마음도 갖추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힘든데 나아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안다. 외가쪽 할머니들도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계시다. 내 우울증이 유전인지 아닌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나는 외할머니께 위로를 많이 받는 편이다. 내가 심리 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어쩌면 사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물 자해를 하고 입원했을 때, 의사 선생님이 내게 왜 그랬냐고 묻고 나서 하시는 말씀이 "그래도 이겨내야지." 였다.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저혈압에 신체화 증상에 어지러움이 가시질 않았고 약으로 인해 한동안 너무 졸렸다. 그 졸린 느낌이 싫어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물론 커피를 마시고 나면 그 성분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마음만 앞서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느꼈고, 역설적이게도 내가 나아야 하는 이유가 생겨버렸다. 미래에 내 도움을 받을 수많은 내담자들을 위해 나는 나아져야 한다. 내게도 소신이 생겼기 때문이다. 심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겠다는 소신 말이다. 그러려면 나부터 나아야겠지. 세상 모든 일들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그 순간 신기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하기 싫은 일도 해내고 싶어졌다.
심리치료사는 무조건 밝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느 정도 긍정이 필요하면 가질 것이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심적 아픔에 인색한 나라지만 조금씩 노력 중인 나라이기도하다. 나는 그 변화에 보탬이 되고자 한다. 그렇기에 지금의 고통을 잊지 않을 것이다. 내가 흘렸던 눈물들을 잊지 않고 잘 간직해 두었다가 자료로 쓸 것이다. 언젠간 치유되어 행복하게 웃는 나와 내담자가 있는 미래를 상상하며 나는 다시 미소를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도전이 두렵지 않다. 열심히 살 이유가 생겼다. 나 자신을 찾기 시작했다. 어차피 (만약이지만) 평생 함께 가야 하는 우울이라면 오히려 내가 사용해서 남을 돕는데 쓰겠다. 나의 첫 내담자는 내 자신이다. 잘 해 보자. 잘 부탁한다, 내 자신. 나아가되 스스로를 돌보며 성장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