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6 - 우울증 5달째
아침 9시부터 컴퓨터 수업이 있었다. 의욕이 충만한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기 싫어 항우울제를 복용한 지 한 시간도 채 안 돼서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거절을 못해서 강사님께서 사 주신 카페라테까지 마셔버렸다. 이유는 마음이 조급해진 것이 틀림없다. 자격증을 따야 하는데 엑셀에서 하나도 못 알아듣겠으니까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겼나 보다. 그리고 무엇보다 40만 원 치의 돈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한 시간 뒤, 손에 땀이 나면서 수전증이 생겼다. 일시적인 현상이었지만 불안이 확연히 보일 정도였다. 딴생각이 들어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항우울제와 커피는 상극인 것을 안다. 둘 다 중추신경계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랫동안 말초신경계만 사용했다고(스스로 믿는) 나는 중추신경계의 활발한 활동을 누구보다 원했다. 그 결과 의욕은 돌아왔지만 몸은 잘 따라주지 않는다.
결론은 조급함은 우울증에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Haste is waste. 그래도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나만의 신념이자 소명이었다. 나처럼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감정적이고 극단적인 내가 지금의 나 하나도 간수 못하는 내가 이런 꿈을 꾸게 된 이유는 겪어본 사람이 더 잘 안다고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리학에 관심이 깊어졌고, 그와 관련된 책들만 당긴다. 이게 우울증 때문에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내 기질과 천성 때문인지는 차차 알아가 보도록 할 것이다. 일단 우울증을 겪으면서 내게 일어난 일들을 나열해 보자면, 첫 번째로 불면증과 과다수면이 번갈아 가며 나를 괴롭혔고, 두 번째로, 가슴통증과 손 발 저림, 아픔 등의 신체화 현상이 생겼다. 세 번째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아 스스로를 가두게 되었다. 인지능력은 물론 기억력 감퇴로 인한 물건 상실이 자주 일어났고, 기분이 다운되면 조그만 일에도 쉽게 지쳤다. 물론 감정적인 부분에선 더더욱 그랬다.
몸과 정신은 이어져 있다. 그래서 이 둘은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 그래서 우울할 때 주로 나가서 산책을 하고 운동을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움직이면 조금이나마 무기력이 가신다. 하지만 보통은 움직이고 싶어도 잘 움직일 수가 없어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작은 것부터 하나 하나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은 감정 일기 쓰기, 독서, 컴퓨터 자격증 공부, 화상영어, 요가, 등 꽤 많지만 이건 내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실제로 지난 4달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살사고도 생겼고, 자해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원하는 건 이렇게 살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내가 스스로 약점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역이용해 장점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게 앞으로 지치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 자체가 온통 실험이며, 실수와 자극 등 내가 느끼는 모든 것이 자료다. 나는 살아있는 인간 자료가 되기로 했다. 우울질인 성격이 만약 영원히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가 가지고 가며 타인을 돕기 위해 사용하리라. 나는 어쩌면 내가 이렇게 우울증을 계속 겪는 이유는 심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외국에 나가서 심리학에 대해 더 배우고 싶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가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 모습과 상황이 어떻든 상관없다. 나는 이렇게 얻은 내 깨달음이 그동안 힘들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걸 위해 태어났다는 느낌은 처음이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것 또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의 반증일까?
앞으로도 나의 일지는 계속될 것이며, 다만, 일지를 작성하기 위해 무모한 짓은 벌이지 않을 작정이다. 그저 내가 살아가는 과정 안에 일어나는 다양한 상황들을 관찰하고 나 자신을 잘 살피는 것을 우선으로 시작할 것이다. 단 한 가지, 내 꿈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엑소시즘 오브 에밀리 로즈'를 보면 에밀리는 마지막에 성모 마리아를 만날 때 선택을 하게 된다. 고통스럽게 죽어 사람들에게 신의 존재를 알리느냐 아니면 성모 마리아를 따라가 평온하게 떠날 것이냐. 에밀리는 편한 길을 택하지 않았다. 그녀는 운명을 받아 들었다. 나는 종교도 없고 운명도 믿지 않는다. 다만, 그녀의 자세가 존경스러울 뿐이었다. 그렇게나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 않았던 건 그녀의 좋은 마음에 달려 있었다. 생과 사를 고민하지 않고 바로 그렇게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적다 보니 보고서의 형태를 벗어나게 되었다. 감성적인 나의 기질이 발휘된 듯하다. 그러니 앞으로는 조금 더 객관적으로 적어 보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