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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위한 완벽한 임상실험

나 자신에게 닥친 위기를 역이용하는 것

by 몽도리

우울증을 겪으면서 느끼는 고립감, 외로움, 신체화 증상, 이 모든 것은 나에 대한 임상실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동안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어떤 것인지 몰랐던 것 같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었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았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못해 과잉이었던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었고 다시 한번 더 일어서기로 했다. 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들어준다. 스스로 유리멘탈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다만 어려서부터 주변에서 내게 그렇게 말했기 때문에 그랬을 뿐. 난 심리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현실적으로 돕고 싶다. 세상은 마음이 다친 사람들에게 그리 따뜻한 시선을 건네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더더욱. 하지만 나는 그게 억울하다. OECD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률이 1위인데 정신과 교수들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2명 있다. 나의 상담 선생님과 정신과 선생님.


스트레스받을지라도 연구를 해보고 싶다. 우선 첫 단계는 내게 일어나는 변화를 끊임없이 기록하는 것이다. 이미 하고 있는 작은 노력은 감정일지다. 그리고 타인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눈치를 보지 않고 인정욕구를 버리고 타인이 나를 싫어해도 괜찮다는 마인드를 가지는 것이다. 참 아이러니하고 웃기는 얘기다. 멘탈이 유리여서 항상 인간관계로 힘들어하고 심적으로 곪은 내가 심리에 관심이 많고 정신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어 한다는 게 말이다. 사실 두려움은 이제 없다. 오직 이게 내가 태어난 이유고 소임인 것 같다. 내게 이런 시련이 주어진 이유를 알 것 같다. 나는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외칠 수 없는 사람들. 주위에서 그 아픔을 인정해주지 않아 힘든 사람들. 기질적으로 소심한 내가, 우울증으로 여러 번 고통받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세상 사람들이, 마음이 불편한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미 내 인생은 가시밭길에 들어섰다. 꼬일 대로 꼬였고, 이제는 풀 일만 남았다. 이유 없는 고통과 시련은 없다. 니체가 그랬다. 너를 죽일 수 없는 고통은 너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나는 죽을 수 없고,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소중한 20대를 낭비하지 말라고 하고, 부모님은 그까짓 우울증 이겨낼 수 있다며 나보다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라고 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병을 안고 가야만 할 것 같다. 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불안으로 인해 미칠 지경에 이르렀고 그 와중에도 나아가려 이것저것 시도하는 내가 대견하다. 물론 남의 눈에는 저게 노력하는 건지 미적거리는 건지 싶겠지만 난 지금 임상실험 중이다. 나 자신을 가지고 말이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나는 이미 나만의 연구자료를 만들고 있다. 관련된 논문을 쓰라고 하면 흥미를 가지고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위해 필요한 건 다 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결론이다. 이번주에 상담선생님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조언을 구할 것이다. 완벽하다. 망가진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꿈이라니... 우선 나 자신부터 사랑해야 하기에 자존감을 지키는 법을 배울 것이다. 이보다 완벽한 실험 조건은 없다. 누군가는 내가 미쳤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 나는 미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중한 꿈이 생겼고, 누구보다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약점을 역이용해서 나아갈 것이다. 부모님이 내 의사결정을 존중해 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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