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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정도 늦는 책상

사소한 것들에 대하여

by 몽도리

원래 광복절 날 받기로 한 책상이 실은 아주 낡고 쓸 수 없는 책상이어서 들여놓지 못하게 됐다. 사실 그 조그만 일에 아이처럼 운 이유를 나 스스로도 잘 모르겠으나, 원래 쓰던 책상에 신물이 났었던 나는 책상을 바꾸는 것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하고 있었다. 엄마는 자신의 절친이 우리 집에 오면 절대 눈치 없이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했고, 나는 그 '눈치 없는'이라는 단어에 꽂혀서 펑펑 울었다. 이건 내 의지가 아니다. 호르몬의 의지일 것이다. 내가 겨우 책상 하나 바꾸지 못한다고 떼쓸 나이는 지났으니 말이다. 21살이면 성인이다. 하지만 성인이기도 하면서 아이이기도 하다. 어른아이, 어른이. 조그만 일에도 크게 영향을 받고 마치 물처럼 주변 환경에 의해 쉽게 변하는 나는 그게 단점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 말은 내가 좋은 환경에 가면 좋게 변한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지는 환경을 때로는 내가 정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가령 예를 들어 결국 새 책상을 시켜서 그 책상이 다음 주에 오게 되어 일주일간 바닥생활을 해야 하는 이번주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목매달기보다는 지금은 앞으로 나아갈 때다. 매일마다 스스로에게 말한다. 어둠이 끝나면 빛이 올 거라고 때론 자살충동이 일어날 때도 가끔씩은 있지만 더 이상 실행에 옮기려 하지 않는다. 바보 같은 짓인 걸 알기 때문이다. 모든 고통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겨내면 뒤에 어마어마한 것들이 따라온다. 퇴원을 하고 난 뒤, 나는 내 처지가 이제 좋아지길 바랐다. 더 이상의 우울감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진짜 고통의 시작이었다. 욕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심과 발전하고 싶은 욕심은 조급함을 부른다.


조급함과 불안감 자체가 나쁜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뿐이다. 그동안 여러 영화를 봤고, 힘이 되는 노래들을 들었으며 매일 나 자신을 일으켰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고 소확행이라고 여겼기에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내게는 매우 중요했다. 이제 보니 그게 문제였던 것 같다. 사소한 일, 어찌 보면 그게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닌데 나한테는 의미가 컸던 이유가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새 사소한 것들에 행복을 느끼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여전히 힘들지만 가능한 것이 되었고 내가 하는 소소한 것들에 내가 만족을 못할 뿐이지만 뭔가 해내고 있다는 느낌을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짜증 나는 일이 조금만 생겨도 나는 화가 났고, 나보다 6살이나 적은 동생이 더 성숙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런 때에는 비교를 하면 안 된다는 걸 말이다. 비교상대가 누가 되었든 간에 비교는 금물이다.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낫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고독한 싸움이긴 하다. 다른 신체적 질병에 비해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니 말이다. 내가 처음이 질병에 걸렸을 때 엄마는 불만을 토로했다. 도대체 왜 그런 병에 걸리냐고 말이다. 아직까지도 엄마는 의지로 바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고, 아빠는 빨리 예전처럼 돌아오라고 하고 있다. 내 마음도 마찬가지다. 의지로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그럴수록 잘 안 됐기에 지금 시점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거리 두기를 하고 싶다. 가장 중요한 점은 성실함과 자기 긍정, 그리고 확신이다. 일단 나는 여러 번 겪어봤기 때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부디 훗날에 지금의 나처럼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길. 외국에서 공부를 하며 심리에 관한 박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좋은 생각인 것 같다.


내가 직접 이겨내 보고 그것들을 적어 내려가면서 하나의 기록을 만든 후, 연구해보고 싶다. 여러 영어 관련 논문들을 읽어보며 보완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내고 싶다. 지금은 그저 한낱 꿈에 불과하지만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해보고 싶다. 그 과정에서 책도 쓰면 좋을 것 같다. 우울질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 어차피 계속 우울증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차라리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럼 이를 위해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 볼까. 뒤돌아보기 금지, 멈춤 금지, 나 자신 사랑하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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