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브를 죽일까 살려둘까
요즘 윤하의 6집 리패키지 앨범이 그렇게나 갖고 싶어졌다. 전부 지금의 내게 필요한 가사들로 이루어진 노래처럼 느껴진다.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더 나아진 오늘을 칭찬하며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은 조급함을 불러온다. 욕심이 많은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조급하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면, 후회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과거 회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잘해나가다 중간에 또 흔들리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 자신과의 싸움이기에 고독하고 슬프다. 나만 동떨어져 다른 세상에 사는 듯하다. 사실 나는 어른이 되기 싫었다. 마음 안에 항상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의 원인 또한 사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원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7살 때부터 나는 남들과 무언가가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갔다.
때로는 기질 탓도 해보며 나와 다른 오빠와 동생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자책을 하며 나 자신을 아프게 하는 건 스스로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지만 염세주의자로 사는 게 훨씬 편했다. 조그만 일에도 눈물이 나는 성격은 성인이 되고 나서 나에게 큰 복병이 되었다. 상담 선생님은 내게 레이브를 사랑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감정이니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씀이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마음은 앞서는데 몸이 안 따라준다. 머리도 몸도 전부 0.5배속으로 느려졌는데 마음만은 저 앞 200m 달리기를 반복하고 있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어른이 되기 싫었던 건, 사실, 어른이 되면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전보다 더 당당하게 어깨를 피고 뭐든 척척 해내며 꿈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 나가는 그런 멋진 어른이 되고 싶었다.
사회 초년생으로 따지면 내 나이는 이제 시작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마음속에 피터팬과 햄릿이 들어있다. 죽여보려 했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발악을 하며 레이브라는 검은 소년으로 합쳐졌다. 나에게 있어 레이브는 소설의 소재이자, 피하고 싶은 대상이다. 낙관적인 사람들을 보면 내게 그놈이 들어있는 게 억울해진다. 어떤 사람은 내게 그놈을 죽이고 새롭게 나아가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놈을 안아주고 수용해 주라고 한다. 하지만 난 감정적으로 너무 지쳤다. 싸우기를 택했지만 이젠 그놈이 나와 한 몸인지 아닌지도 분간이 안 간다. 그럴수록 중요한 게, 착각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놈과 다르다. 때가 되면 그놈도 떠나가겠지. 두려움과 절망을 안고 멀리 떠날 때 우울증이라는 큰 적을 몰래 암살할지 배웅할지 정할 수가 없다. 모르겠다,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으니 나는 잠시 레이브를 잊고 현재에 집중할 것이다.
과소비와 폭식, 그리고 눈물, 레이브는 끝도 없이 배가 고픈 것 같다. 아마 1년 동안 나를 떠나 방황하다 다시 돌아온 거겠지. 하지만 내가 홀로 서기를 할 때쯤 레이브도 내 마음속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