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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임상 실험 보고서(12)

조급함과 외로움이 떠나지 않을 때

by 몽도리

사실 난 부모님의 사랑을 과분하게 받고 있다는 걸 잘 안다. 청소년 심리상담센터를 다녀온 후, 엄마는 펑펑 울었다. 왜 모든 게 자신의 잘못이 된 건지 모르겠다고 하며 말이다. 난 절대 엄마가 마음 아파하길 바란 적이 없다. 다만 내가 변하기 위해서는 독립이 필요하다고 절실하게 느꼈을 뿐이다. 부모님을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말이다. 부모님은 자유를 원하신다. 더 이상 자식 걱정하지 않고 어딘가 터를 잡고 살고 싶어 하신다.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나는 절대 아이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물론 그전에 연애나 결혼을 할 능력이 되어야 하긴 하지만. 자유가 되고 싶어 하는 부모님을 자유롭게 해드리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변해야만 했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고, 나는 또 불안해졌다. 빨리 독립해야겠다는 걱정은 생겼지만 그게 한 순간에 바로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안해,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위로는 하나도 없는 삶을 살아왔어. 다들 나한테 다 틀렸다고 말하고 그러지 말라고만 말했지, 내가 힘들 때 누군가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었어. 그래서 너한테 위로를 해주진 못 해. 나는 대신 너한테 조언을 해줄 수 있고, 너에 대한 걱정은 전부 화로 나가. 상담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은 타인이니까 너한테 괜찮다고 천천히 나아갈 수 있다고 하지만 나는 너의 시간조차도 소중하고 이때까지 네가 해왔던 노력들도 소중해. 그래서 네 아빠가 상담실에서 내 대리만족을 위해 자식한테 돈을 붓는 헛짓거리를 했다고 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 내 헌신과 사랑이 고작 대리만족이라니. 엄마가 평소에 말을 좀 세게 하는 건 인정해. 하지만 너에 대한 내 걱정이 화고, 상처고 협박이면 우리는 같이 안 사는 게 맞아. 너무 안 맞아. 같이 살려면 위안은 상담 선생님께 받아. 나는 그거 못 해줘."


동감이다. 엄마와 나는 극과 극의 성향을 가지고 있기에 자주 부딪혔고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를 주었다. 아빠는 내가 아빠와 비슷한 성격인 걸 알고 있어서 내가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같이 힘들어했다. 이런 동기화는 가족관계에 좋은 게 아니다. 건강한 게 아니다. 오빠도 빨리 돈을 벌든 공부를 하든 집에서 독립하는 게 서로에게 좋다고 한다. 내년이면 벌써 22살인데 지금까지 내가 뭘 한 건지 알 수가 없다. 스트레스 안 받고 잠을 충분히 자라고 정신과 선생님이 약을 처방해 주셨지만 나는 잠이 드는 게 너무 싫어서 카페인을 마구 섭취한다. 그리고 눈앞에 별이 나타나 어지러우면 카페인 때문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부모님을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다. 중학생인 동생 또한 마찬가지다. 자취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다. 알바를 하고 싶은데 아직도 사람이 불편하다. 자신감이 떨어지면 당당하지 못해서 남들 앞에 서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그저 나 자신과 타협하고는 내 탓이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고쳐보려고 노력은 조금씩 나름대로 하고 있는데, 점점 느낀다. 이 노력을 넘어서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하지만 단계는 밟아야 한다. 조급해져 봤다. 조급함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매일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도서관에 갔고, 감정일기도 쓰고 조그만 일들을 반복해서 했다. 하지만 이 과정은 지루함과 때로는 고통을 동반했다. 하지만 변하고 싶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드는 생각은 변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자연스레 심리학 책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내게 위안을 주는 것은 영어였다. 우울증 때문인지 아닌지 원인을 정확히 밝힐 수 없는 내가 겪는 여러 가지 현상들(신체화 증상, 기억력 감퇴, 인지능력 저하 등)은 때로는 분노와 허무감을 가져왔다. 예방하는 법을 배우고 그걸 넘어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어졌다. 심리학자, 다중언어구사자,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감정이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이 안 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공통적으로 전부 괴롭다는 것이다.


이겨내면 성숙, 못 이겨내면 패자로 세상은 바라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우리의 의지가 아닌 것을 우리가 바라는 것은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라는 것이지, 계속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난 꿈을 가졌다. 심적으로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고, 다양한 언어를 배워서 해외에서 연구도 하고 싶다는 꿈. 목표는 독립과 대학원 진학이 되었다. 멀리 있는 꿈이지만 내가 살아갈 원동력을 제공해 주기엔 충분했기에 나는 나 자신에게 매일같이 칭찬을 해주고 있다. 고맙다고, 다시 일어나 주어서 고맙다고, 내게 이 고통이 온 것은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니 지나가면 큰 자산이 될 게 분명하다고. 쉽게 지치지 말고 단련하고 수련해서 나아지자고. 지금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자고 그게 가장 느리고도 빠른 길이라고. 여전히 세상은 무섭다. 뉴스에는 팍팍한 현실이 그려지고 밖에서 행복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전부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매번 나는 나만의 인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게 된다. 그리고 불안감과 두려움에 휩싸인다.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만, 집중하자. 내게는 꿈도 있고 목표도 있다. 그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이니 힘들어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죽도록 해도 죽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충분히 낫고 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릴 작정이다. 가자, 응원한다, 나 자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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