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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임상실험 보고서(3)

자매에게 해주는 영어문법 과외

by 몽도리

동생하고 과외를 하면 항상 서로가 안 맞다는 걸 느낀다. 그게 서로의 성향 차이라고 믿어왔던 이유는 나와 성향이 다른 오빠의 과외를 내가 받아본 적이 있었고, 오빠가 그때 왜 그렇게 답답해했는지 이해가 됐기 때문이다. 동생은 내가 분석하기론 '머리는 좋지만 암기는 싫어하는 이해형'이다. 수학과 과학은 이해하면 잘 풀리는데 암기가 유난히 많은 영어는 너무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영어를 '이해'시켜주기 위해 문법 교재를 따로 사서 공부했다. 하지만 동생은 교재가 너무 어렵다고 내가 설명해 줘도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냐고 이미 수학, 과학에서 지력(知力)을 다 썼다고 영어에 할애할 힘이 없다고 자기 머릿속에 넣어달라고 한다. 잘 이해가 안 되면 내 자질이 부족하다고 하고, 자신과 성향이 같은 오빠랑 수업을 했으면 잘 이해될 것이라고 하며 학교에서는 이렇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며, 문법을 잘 몰라도 중학교에서 영어를 90점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오빠처럼 과외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개념 설명 없이 스스로 읽어보라고 하고 문제 풀라고 하고, 모르겠으면 답지 보라고 하고, 나는 폰을 보면 된다. 하지만 나는 엄마 돈을 받고 제대로 가르쳐 보고 싶었다. 노력도 많이 했다. 교재를 다른 걸로 바꿔서 수준을 내려보기도 하고, 설명 방식을 바꿔보기도 하고, 독해도 커리큘럼에 넣었다. 그리고 부모님께 이런 고민을 토로하자, 부모님은 그냥 대충 해줘도 된다고 했다. 받아들이는 것은 동생의 몫이며, 동생이 그 당시 그런 말을 한 것은 동생이 사춘기이기도 하고 그때 에너지가 소진돼서 하기 싫음을 표출한 것일 뿐이라고 하셨다. 그 분석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나도 오빠에게 과외를 받을 때와 과외 선생님께 영어문법을 배울 때 그랬던 것 같다. 동생 안에서 내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그 결핍을 동생을 통해 채우려고 한 건 아닐지 자세히 생각해 보았다.


그래서 '성향과 결핍'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고 싶어졌다. 성향에 따라 결핍의 종류도 다양하고 크기도 다양하다. 사람마다 각자의 결핍이 있고, 그 결핍들은 제각기 다 다르다. 나는 집중력과 활발한 성격에 대한 결핍이 있다. 그건 내가 가지지 못했고 형제자매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핍은 어찌 보면 비교를 통해 보이는 것 같다. 결핍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도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고민을 하고, 결국에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타인에게도 자신과 같은 결핍이 있을 거라 착각하고 도와주려고 한다. 하지만 상대방이 그런 결핍이 있을지 없을지는 파악할 수 없다. 나와 타인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결핍에 예민한 사람과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 없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 그럼 이 결핍이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남에게 전가되기 전에 통제하는 게 맞을까. 아니면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없애는 게 나을까. 나는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문제다. 우리 가족이 힘들어하는 이유의 핵심도 어찌 보면 '결핍'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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