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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임상 실험 보고서(11)

물 밑에서의 발버둥

by 몽도리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은 것들을 하나 하나 시도했다. 컴퓨터 자격증, 요가, 화상영어, 회화 공부, 문법 공부, 동생 과외, 요리, 글쓰기 등 나는 많은 작은 것들을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는 내게 결과 상관없이 과정을 즐겨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 앞에 당장 결과가 없으면 불안하다. 컴퓨터도 요가도 시작한지 얼마 안 됐지만 바로 결과를 바라는 나 자신을 고찰하면서 내가 욕심이 많고 성급하다는 걸 깨달았다. Haste is waste.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나는 돌아가다가 영영 그 자리에 머무를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조급해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바심을 부리면 부릴수록 내 의지가 점점 더 깎여 나간다는 것을 느꼈다. 우울 증세도 다시 심해지는 듯 했다. 이는 곧 포기로 이어지기 때문에 나는 짧은 시간에 너무 큰 결과를 바라지 않기로 했다. 매일 최선을 다 하기만 하고 결과는 그저 따라오는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그게 결과를 더 좋게 만들고, 맞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영어를 12년 넘게 공부했지만, 실제 상황에서 영어를 써본 적은 딱 한 번 남짓이다. 그러다 앱으로 회화공부를 시작하고, 그동안 싫어했던 문법을 책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가 배운 것은 동생에게 해주는 과외로 복습했다.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해서 얻은 건 내 위치 파악이었다.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고, 모든 것에는 단계가 있다. 그리고 그 단계들은 절대 공짜가 아니다. 대가를 바쳐야 무엇이든 얻을 수 있다. 돈이든 시간이든 말이다. 여지껏 학원과 학교만 알았었던 나는 정해진 목표에 대한 결과만 인정받는 사회가 냉혹하게만 느껴지고 짜증났다. 하지만 내가 바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노력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노력에는 방법도 중요하고 과정을 즐기고 끝까지 가는 것도 중요하고, 때로는 큰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성인이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최고 어두운 시기에 있다는 착각 속에 빛을 찾고 싶어 조급함이란 녀석을 불렀는데 우울이 그 옆에서 딱 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하지만 시작을 꾸준히 하면서 대가를 바라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인생 자체가 과정인데 결과가 중시되는 건 사회가 그런 것일 뿐이다. 나는 그딴 거 모르겠고 과정을 열심히 최선을 다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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