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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 임상 실험 보고서(9)

서랍을 열며

by 몽도리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혼자 남겨진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한 때 반에서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남자아이가 있었다. 나 또한 그 애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날, 다른 아이가 그 애의 성적표를 찢고 괴롭히는 것을 보았다. 화가 난 그 아이는 선생님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했고, 선생님은 괴롭힌 아이를 추궁했다. 괴롭힌 아이는 반에 나도 있었으니 나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 당시에 나는 평소에 좋아하지 않았던 그 남자아이의 편을 들었다. 직접 여러 조각으로 그 애의 성적표가 찢어지는 걸 봤다고. 괴롭힌 아이는 억울해 했다. 나중에 선생님이 내게 말씀하셨다. 나는 정의로운 마음, 따뜻한 마음씨를 지고 있다고 말이다. 또 한 번은 중학생 때 친구들과 싸워서 혼자 남겨진 친구가 있었다. 그 애는 양궁에 소질이 있었던 아이였는데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다. 나는 혼자 남겨진 그 아이에게 다가가 친해졌다. 물론 그 아이가 속해졌던 무리의 아이들을 신경쓰지 않고 혼자 남겨진 그 친구가 슬퍼하지 않기를 바랬다.


나는 인간관계에서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외롭거나 힘든 사람이 없었으면 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으로 살아갔고, 대부분 나보고 착하고 여리다고 했다. 하지만 점점 어른이 될 수록 그런 면은 사라졌다. 여유가 없어졌고 나는 점점 이기적이고 도움을 바라는 사람으로 변했다. 중학생 때 상담 동아리에 들어간 것도, 상담 동아리 회장으로써 활동했던 것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길 바래서였는데 오히려 그 안에서 내가 치유당하고 말았다. 좋은 기분이었지만 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길 바랬다. 그러기엔 내 능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뒤에는 고등학생을 거쳐 대학생이 되기까지 상담을 꾸준히 받았다. 물론 우울증 때문이었고 죄책감 때문이었다. 나는 문예창작학과 학생일 때 글로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공감을 얻기는 커녕 내 불만과 힘듦만 쏟아내는 글로 변질되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글을 쓰는 것 보다는 내 자신을 변화시키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는 것임을 깨달았다.


마음은 그렇게 앞서가서 결국 '자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문예창작학과에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글을 통해 스스로를 치유시키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물론 내 글이 어둡다는 평이 돌아오긴 했지만 교수님은 그런 상처를 자유롭게 써낼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쳐주셨다. 나는 그런 교수님의 가르침이 좋았다. 사실 나는 내 이전 학과가 그립다. 하지만 난 내 마음이 더 단단해지길 바랬고 현실을 마주하고 싶어졌다. 글을 적는 동안 나는 환상과 상상 속에 빠져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한다고 달라지는 게 없었다. 그래서 길을 꺾어보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배우면서 현실을 생각해서 취업도 하고 지금의 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시 대학을 가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하면서 심리학을 부전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러가지를 시도하고 싶다. 대학 내에서 상담 동아리에 들어가고 싶다. 영어 관련 스터디나 활동도 참여하고 싶다.


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시도하고 싶다. 지금 내가 ITQ자격증을 따기 위한 전형료를 망설임없이 결제하는 것처럼 말이다. 결과가 어떻든 배워간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임해보고 싶다. 물론 결제비가 비싸기 때문에 좀 잘 나오기를 바라지만 뭐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내가 그걸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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