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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어요, 교수님

내가 좋아했던 수업

by 몽도리

문예창작학과 새내기였을 때 가장 좋아했던 교수님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 교수님의 수업을 좋아했었다. 내용도, 과제도 정말 자유로운 형식이었고, 나도 모르는 내 안의 자아를 탐색해 보는 시간이 즐거웠다. 하지만 내가 갑작스러운 자퇴를 하면서 교수님과의 소통은 끝나버렸고, 당황하신 듯한 교수님은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거셨다. 교수님은 내가 우수한 학생이었다며 갑작스러운 자퇴에 깜짝 놀랐다고 하시며 필요하면 언제든 책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교수님께 아무런 연락도 할 수 없었다. 창작에 대한 열의가 식어버렸다는 사실을 내가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교수님께서 아시길 바라지 않는다. 더군다나 뵐 수도 없을 것 같다. 뵐 면목이 없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나는 시키는 대로만 잘 따라가면 좋은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교는 각자도생의 사회, 그리고 약간의 공생이 필요한 것이다. 학과 공부는 꽤 즐겼지만 사회성이 부족했던 나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 점점 깊어져 갔다. 사람을 안 만나면 그런 고민 없이 무사히 졸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공장에서 일하면서 내 사회성의 결여, 부족한 일머리 등 내가 가진 문제점들이 너무 많이 발견되었다. 그러자 자신감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고, 세상이 무서워졌다. 내가 작가가 되어 다른 사람들과 잘 소통할 수 있을지 취업을 해서 먹고살 수나 있을지가 두려웠다. 교수님은 내게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원 진학을 하는 건 어떻겠냐고 하셨지만 처음에는 그러고도 싶었던 마음이 이후 사라지고 말았다. 욕심은 많은데 체력도 안 따라주고 나이는 한 살 한 살 빠르게 먹고 있다. 벌써 2024년의 후반기를 달리고 있는 시점이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고, 그 일들이 나를 성장시켜 줄 것이라고 믿고는 있지만 좋은 일들은 아니었기에 지치기도 했다. 문득 아무것도 모르던 새내기 때가 그리워졌고, 다시 대학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저 맘 편히 술자리에 나가고 동기들과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들기엔 감정이 메말라버렸다.


현실을 직시해 보기로 마음먹으니 마음이 건강해지면서도 복잡해지는 걸 느꼈다.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게 이렇게까지 힘든 일일까. 자책은 금물이라길래 안 해보려고 하면, 과거 내가 난생처음으로 친구를 많이 사귀고 공부에 즐거움을 느꼈던 20살 때가 계속 생각난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공부를 잘한 게 아니라 1학년 때 친구들은 힘을 빼지 않으려고 80%만 할 때, 나는 전력을 다했다고, 그리고 그 전력을 다한 것 또한 내가 전부 스스로 허물어 버렸다는 걸 말이다. 새로운 시작을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더욱더 단단히 먹기로 결심했다. 생각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행동밖에 없다. 이제는 그냥 부딪히기로 했다. 되든 안 되는 그게 마음이 한결 편해지는 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자퇴하기 전, 교수님과 상담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교수님은 작가셨다. 그리고 글쓰기로 치유를 할 수 있다는 점과 타인의 말을 전부 수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과 자기 연민에 빠지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표절에 관한 수업, 소설의 시점에 대한 수업, 독후감, 전부 다 기억난다. 그만큼 성향이 잘 맞았다는 것이다. 교수님 수업을 매번 기다릴 정도로 나는 열의가 있었다. 그 교수님이 뵙고 싶다. 하지만 마음만큼 거리도 멀리 있다. 나중에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한 번 연락을 드릴 참이다. 그때 교수님 강의가 정말 좋았다고. 내가 아주 많이 존경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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