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을 받아들이는 태도
동생과 과외를 하다 보면 동생은 내가 설명을 못한다고 짜증을 내며 그래서 화상영어 면접에서도 떨어진 게 아니냐고 비아냥거린다. 동생의 수업 태도가 평소에 진지했으면 모르겠는데 1도 관심 없는 표정으로 하기 싫다는 말만 반복하는 주제에 내게 지적을 하니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나는 아직 누군가에게 설명을 하는 게 서툴다. 언어에 관심을 더욱더 가지게 될수록 강사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진다. 영문학과와 심리학과를 복수 전공해서 심리학자, 언어강사, 작가가 되려면 내가 원하는 걸 다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설명을 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설명하는 법을 연습하기 위해 이리저리 채용공고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보고 있는 것은 아직 알바일 뿐이지 인턴도 아니고 계약직도 아니다. 사람들은 상상 이상으로 잘하는 경지에 이르면 설명하는 것도 쉬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사람인 건가.
그럼 어떤 방향으로 얼마나 노력해야 무언가를 가르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교양수업으로 교육학을 들을까. 내향적이라도 강사를 하고 있는 선생님들을 많이 뵀다. 나라고 못할 게 뭐 있나 싶었다. 하지만 면접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하긴 유명한 사이트에서의 공고였으니까 2차에 '재심사' 평가를 받은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지만 내년에는 더 잘하고 싶다. 내가 계속해서 무언가를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기쁘기도 하지만 조급하기도 하다. 도대체 이 조급함과 불안은 나를 왜 자꾸 따라다니는지 모르겠다. 나도 여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여유로운 게 권태롭고 나태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는 것 또한 알기에 그 페이스를 맞추는 게 너무나도 어렵다. 성공하긴 위해선 내가 생각하는 것의 이상으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들을 지적과 비판, 등은 엄청나게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기분 나빠하면 삶을 살아갈 수가 없다. 더군다나 내 꿈은 '심리학자'다. 마음수양을 엄청나게 해야겠다. 동생이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위해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면서 내 조급증은 점점 더 커갔다. 내가 언니인데 언니답게 모범을 보여야 되는데... 뭐든 잘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하는데, 오빠와 나에게 돈을 들이부어 동생에게는 교육에 돈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부모님은 동생의 학구열을 어쩔 수 없이 외면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일종의 책임감을 느낀다. 동생의 공부를 도와주고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발판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스스로 돈을 많이 모으기 위해 다시 아이스크림 공장에 들어가서 일할까 생각도 해봤다. 신중해야 하는 결정이다.
두 달 동안 일하고 나서 우울증에 걸렸다. 일이 힘들었고 야간이 격주로 진행되니 힘들었다. 사회 초년생인 나는 호구로써 격주로 야간을 시키지 말아 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고, 당연히 주말에도 일을 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내 뒤에서 수군거리는 태어날 때부터 경력자는 아니었던 사람들이었다. 대놓고 할 말 있으면 앞에서 하시라고 지르고 나왔다면 속이라도 후련했을 텐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 속만 곪 아들어가며 이 정도도 못 버티냐고 자책했다. 그래서 다시는 그곳에서 일하고 싶지가 않았다. 몸이 고단한 건 참을 수 있어도 정신적인 힘듦은 감당하기가 버거웠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 타인 민감성은 너무 높았다. 비교가 일상인 대한민국 사회에서 타인 민감성이 높게 나오다니 나는 내가 저주받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살기 위한 이유들을 만들며 20대에 행복하기를 포기하고 힘들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내 인생이니 그냥 저축하며 행복 따위 나중에도 찾을 수 있으니 조금만 견디고 싶어졌다.
모두가 알다시피 행복과 재미, 발전, 성공, 모든 걸 가질 수는 없다. 선택을 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생기고, 그것들에 미련을 두지 않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답답하다. 무언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느낌인데 구멍을 뚫기 위해 노력해도 매일 같다. 나는 과연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옛 성현들의 말을 새겨듣고는 있는데 내가 고쳐야 할 부분은 어디인가. 지적은 어디까지 수용해야 하며 그 당시의 불편한 감정은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가. 아마 나는 죽을 때까지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