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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보는 나의 10대

고등학생들을 보며 느끼는 것

by 몽도리

우리 동네에 있는 카페만 봐도 정말 많이 존재한다. 문득 대학교 1학년 교양수업에서 글로컬 경제를 배웠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프랜차이즈와 인수 병합에 대해 배웠고 나는 이태원 클라쓰를 가지고 발표를 했다. 그 수업을 들으면서 기업가가 되는 큰 꿈을 꾸기도 했다. 물론 그때도 한낱 몽상가에 불과했다. 나는 지금까지 방황 말고 꿈을 위해 한 게 뭐가 있을까. 가끔 카페에 가면 내 앞에 고등학생들이 앉아서 시험공부를 하며 서로 얘기를 하는 걸 볼 수 있다. 부럽다. 사람들은 지금 내 나이가 청춘의 시작이라 하지만 나는 고등학생들이 하는 얘기들을 들으면 (뭐, 원해서 들은 건 아니지만 나도 고등학생 때 저렇게 말이 많았을까 싶다.)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이런 걸 보면 나는 나의 10대를 치열하게 보내지 않은 듯하다. 엄청 후회와 미련도 남기지도 못할 만큼 열심히 살았으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차마 나오진 않겠지.


아직 대학 발표는 나오지 않는다. 빠르면 11월, 대부분 12월에 발표가 난다. 어젯밤에는 원하는 곳 중 하나에 붙는 꿈을 꿨다. 소속감이 그리웠다. 하나씩 하나씩 잘해나가고 있는데 마음은 조급해지고 이 빌어먹을 조급증을 어떻게 하려고 뭐든 하고 있다. 취업에 성공한 오빠도 부럽고 나보다 어린 동생도 부럽고 고등학생들도 부럽다. 그러니 나는 이제 현재에 최선을 다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 지금 최선을 다 해야 미래에 이런 생각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을 테니. 그리고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할 수 있게 될 테니. 우리나라의 상황이 궁금해서 뉴스를 들어가 보면 혈압이 오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직접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아직 없다. 상담 선생님은 내가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을 때, 즉, 직장에 들어가서 돈을 벌 때가 되면 걱정해도 되는 걸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나는 느리다. 나는, 대기만성형이다.


항상 친구들이 힘들 때 나는 성공을 맛보았고 친구들이 나아가고 있을 때 뒤쳐졌다. 행복을 함께 나누기도 응원해 주기도 격려해 주기도 애매했다. 그래서 항상 조급했다. 나랑 비슷한 성향 즉, 생각이 너무 많아서 잠도 많이 자고 집중이 산만해지는 주변 사람들은 나를 안쓰러워하며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정말 싫었던 고등학생 시절, 처음으로 우울증을 만나게 되었고 사실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을 깨닫게 된 시점, 나는 불안증에 시달려 처음으로 불면증을 만났고 지금까지 관리를 하고 살아가게 되었다. 나의 스몰 트라우마들은 차곡차곡 싸여 내 목을 조였고 나는 가끔 충동적으로 변하기도 비관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동굴 밖으로 나오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는 법을 완전히 깨달았다고 생각한 순간 다시 무너지고 일어나는 과정을 반복했다.


정말이지 지독했고, 징글 징글했다. 하지만 이겨낼 때마다 그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엄마는 내가 성향 탓에 우울증 뒤로 숨는 거라고 게으르다고 했지만 엄마는 모른다. 내가 대학에 가서 얼마나 외로웠고 더 노력하기 위해 스스로를 고립시켰는지 말이다. 나는 밥을 거르며 공부를 했다. 발표도 계속했고 미친 듯이 성격을 바꾸기 위해 노력했지만 서툴렀다. 수많은 실수들을 했고 과거의 사건들이 반추되면서 실패 마일리지가 쌓였다. 하지만 작은 성공 마일리지들을 쌓아서 복구시키려 노력했고 나라는 시스템은 점차 재구성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많은 곳도 나름 익숙해졌고 학교에 가게 될 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걱정도 되고 불안감도 아직 존재하지만 나는 그 안에서 나를 지킬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빠가 부모님께 월급을 타서 용돈을 드렸다.


아빠는 나보고 나는 언제 그럴 수 있겠냐고 물었다. 엄마는 그런 아빠를 말렸고 아빠는 풀이 죽은 내 얼굴을 쓰다듬어 주시며 언젠가는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셨다. 나도 그러길 바란다. 아무래도 현재의 목표는 너무 높게 잡으면 안 되겠다. 낮게 잡아서 성공 마일리지를 쌓아서 자기 확신을 단단하게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주변 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나이에 대해 너무 집착하지 않으려 한다. 미리 이 인생을 경험한 사람들도 이런 불안감을 거쳐 성숙해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죽기 전까지 성장한다. 사실 나의 성장을 대략 11년 정도로 잡아놓고 성격적 결함과 태도 등을 그 정도 시간을 들여 바꾸기로 계획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니까 나도 30대쯤이 되면 강산과도 같은 변화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너무 힘들 때 가끔 운세를 검색해 보곤 하는데 이제는 안 하기로 했다.

같이 제트보트를 타고 있는 '취업에 성공한' 우리 오빠


운세에서는 나의 최고 위기는 30대에 온다고 되어 있었다. 내가 가장 성공을 바라는 나이대다. 그러니 다 무시하고 나는 내 길을 가련다. 나는 노력해서 30대에 성장한 나 자신을 다독여 줄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나 자신을 만족해 주고 사랑해 줄 것이다. 내 성공이, 행복이 조금 늦게 온다 해도 그 과정이 고되다고 해도 내 인생이니 그때마다 내 감정은 내가 선택할 수 있다. 구미호전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길이 험하면 꽃씨 뿌리면서 가면 돼." 여주인공이 했던 말이다. 정말 좋은 대사라고 생각한다. 나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내가 갈 가시밭길의 가시들을 잘라내고 꽃씨를 뿌릴 것이다. 사막에 나무를 키운 사람들처럼,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간 사람들처럼 말이다. 나는 남들에게 무시받기도 싫어하는 자의식 과잉이 조금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점을 고쳐나가 주변 사람들을 더 이상 피곤하게 만들지 않기로 한 이상 난 조급함을 버려야 한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리듯 쉽게 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유를 가지는 건 내가 선택할 수 있다. 내 감정을 잘 컨트롤하고 인생의 나쁜 점만 바라보기보다는 재밌는 점들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생각해 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곧 22살이다. 1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그동안 많이 아팠다.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해졌다. 누가 이 나이가 가장 좋은 나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미래의 내가 그 말을 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나는 나아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노력과 성장을 택하겠다. 타인을 돕겠다. 지금은 힘들지만 나랑 성격이 비슷한 사람들도 심리학 전공 분야에서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안다. 불가능한 것도 아니고 지금 나아가고 있으니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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