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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통해 찾은 여유

나만의 기록을 남기다 '레스토리'

by 몽도리

애매한 시간이어서 밖에 나가기 힘들면 나는 집에서 요리를 한다. 집에만 있는 재료로 내가 원하는 요리를 할 수 있을지 판단하고 남은 재료 짬 처리를 하는 게 나름 재미있다. 마침 집에 '백종원의 된장라면'의 재료들이 다 있었다. 우울증 테라피 중 하나인 요리는 큰 성취감도 주며 집안 음식물 쓰레기 양도 줄여주며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여준다.

레시피는 '만개의 레시피'에 다 나와있었다. 그리고 쉽게 따라 할 수 있고 성취감도 얻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인 요리 었다. 원래 다른 라면 수프로 만들고 싶었지만 내게 있는 게 까르보 불닭 수프밖에 없었으므로 최대한 수프양을 적게 넣으려 했다. 사리면과 대파, 계란은 집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밖에 나가서 사 오는 것보다 이렇게 집에 있는 재료들로 해치우는 게 기분이 더 좋다.


가끔은 가족들에게서 해달라는 메뉴를 골라 저녁을 하기도 한다. 동생 같은 경우에는 '하울 정식'을 먹고 싶다고 해서 나름 따라 해봤는데 그냥 집에 있는 통조림 해치우기 프로젝트가 되어 버렸다. 그래도 맛있다고 그릇을 다 비우는 동생을 보면 요리의 노고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나는 절대 레시피를 똑같게 하지 않는다. 항상 변형을 주고 없는 재료는 다른 것으로 대체한다. 그리고 어떤 게 내게 없는 것과 비슷한 맛일지 생각해 보며 그 결과가 좋을 때 묘한 쾌감을 느낀다. 내가 만든 요리는 우울증 테라피 중 하나였지만 어느 순간 가족들이 기대하는 별미가 되었다. 아빠도 나도 요리감각이 조금 있다는 듯한 것을 느꼈다. 사실 먹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걸 맛보는 걸 좋아하지만 그것과 만드는 것 또한 관련이 깊게 있다. 많이 먹어보지 못하고는 절대 요리를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내 소견이다.


계속 노력하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음식이 생겼다. '계란찜'은 가족들이 내 얼굴만 보면 다른 사람은 이런 맛이 안 난다고 나보고 꼭 해달라는 음식이다. 그 비법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이지만 가장 좋은 건 체를 쳐서 마지막에 입자를 부드럽게 해주는 것이다. 간도 좋아하지만 나는 새우젓 대신 참치액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사실 계란찜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다. 어렸을 때부터 가장 많이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다. 외할머니께서 한창 식당을 하시고 있으시던 도중 나는 할머니가 계란찜을 만드는 것을 어깨너머로 구경하고 했다. 할머니는 우유를 쓰셨고 나는 장염에 걸렸을 때도 할머니의 계란찜을 찾았었다. 그리운 맛의 80%는 부드러운 식감이 다 했었다. 그 느낌을 잊지 않았나 보다. 물론 할머니와 나의 레시피는 차이가 크지만 할머니의 계란찜은 내 무의식 속에 박혀 있었던 것이다.

설거지를 하고 남은 재료를 치우는 것도 잡생각을 없애주어 너무 좋다. 그리고 어떤 그릇에 담을지 마지막에 무엇을 추가하거나 변경할지 정하는 것도 즐겁다. 무엇보다 레시피를 잘 따라가다가 특정한 부분, 중요한 부분은 직접 바꿔서 이리저리 실험해 보는 것도 너무 좋다.

가끔은 실패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맛만 좋으면 된다고 먹었다가 아쉬워서 다시 하고 다시 하다가 포기하는 요리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완전한 실패가 아닌 애매한 음식들을 보면 일말의 가능성이 보인다. 크림 브릴레를 만들 때 그랬다. 10번째 도전에 이런 모양이 나왔을 때는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만든 것에 의의를 두니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물론 이 과정에서 계란도 많이 썼다. 하지만 남은 투게더 아이스크림을 처리해 버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이 아이는 아빠의 입맛에만 든 아이다. 시럽이 너무 빨리 굳었지만 맛만 지킨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김치찌개인데 맛만 좋았다. 가족들의 호평을 받았고 (백종원 선생님 또 감사합니다.) 이젠 자취를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재료를 다듬는 것도 간을 위해 재료를 추가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그리고 요리를 통해 스트레스가 풀릴 수 있다는 것도 깨달은 때였다. 요리하고 설거지를 그 김에 해버리니 집안일도 한 번에 처리해 버리는 '일석이조'였다. 아마도 우리 집안은 요리에 대한 감이 조금은 있는 것 같다. 나는 할머니만큼은 아니더라도 요리를 잘하고 싶어졌다. 그렇다고 요리를 업으로 삼고 싶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자취할 때 다른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할 수 있고 나 스스로 취미로 음식을 해 먹는 즐거움을 유지하고 싶은 것이다.


남은 재료들로 밥전을 만들었고 소스는 육회를 사고 시장에서 얻은 걸로 대체했다. 하지만 밥전을 부치는 데에는 많은 고난이 있었다. 뭉치지 않길래 옥수수 전분을 넣었지만 그렇게 하니까 맛이 이상해졌다. 결국 모양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양이 됐지만 맛이 딱 그 정도였다. 하지만 소스 덕분에 어찌어찌 아빠와 동생에게 먹일 수 있었다. 육회를 사고 남은 소스와 곁들여 먹으니 한 끼 식사 정도는 책임질 수 있는 정도였다. 앞으로 몇 번만 더 실패하면 맛있게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 볶음밥 또한 남은 재료들로 만들었는데 호평을 받은 요리다. 어쩌다 보니 간을 잘 맞추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계란찜과 함께 먹으니 최고 궁합이라고 동생이 말해주었다. 그 와중에 통조림 햄을 싫어하는 엄마를 위해 훈제 샌드위치 햄 남은 것을 넣고, 저번에 남은 식재료인 콩나물을 넣으니 엄마도 잘 드시기 시작했다. (원래 입맛이 까다로우신 분이어서 라면 밖에 안 드시는 분이다) 나는 요리의 또 다른 목적을 만들어냈다. 삼시세끼 라면만 먹으려고 하는 엄마를 저지하는 것이다. 엄마는 한평생 라면을 너무 좋아하셔서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으시는 듯했다. 그래서 매번 밥을 차려두시고는 나중에 혼자서 라면을 드셨다. 하지만 아빠는 그걸 못마땅하셨고 요리주기가 느슨해진 나를 불러 요리를 이어가도록 하셨다.


우유떡은 많이 실패하다가 결국 성공해 낸 불굴의 의지로 만들어낸 간식이다. 바나나 우유를 썼고 (유튜브 -이상한 과자가게 이사장님 감사합니다) 결국 '맛'은 있는 아이로 만들어 냈다. 당도가 조금 떨어지는 것이 문제인데, 그래도 처음에 설탕 대신 소금을 넣어 동생을 의도치 않게(?) 골탕 먹인 것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든 음식들의 사진을 다 찍어 폴더에 저장해 뒀다. 폴더의 이름은 '레스토리다.'

'Restaurant와 story'의 합성어다. 나만의 음식들에는 나만의 스토리가 담겨있다. 나의 실수와 실패, 그리고 때론 하찮게 느껴져도 내가 느꼈던 소소한 행복도 들어가 있다. 이전에는 동생이 나보고 괴상한 음식만 만든다고 요리하지 말라고 한 적도 꽤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요리사인 마냥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나를 시킨다.

커피빵은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하다가 인터넷 레시피랑 병합해서 얻어낸 결과다. 모양이 이상한 걸로 보아 무언가가 잘못됐는데 아직 원인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도 맛이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식감과 익힌 정도는 괜찮았는데 어쩌다가 갈라졌는지 하지만 나는 보면 볼수록 이 모양이 마음에 들었다. 왠지 모르게 초신성 폭발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별을 닮기도 했고, 음... 사실 합리화다. 요리 중 베이킹이 난이도가 가장 높은 듯하다. 할 때마다 족족 실패하니 말이다. 오븐도 써봤고,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기도 써봤는데 도저히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다. 인터넷 레시피, 책 레시피를 다 따라 해봐도 뭐가 문제인지 모를 정도로 제빵은 힘들었다. 그래서 관련 종사자들을 존경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요리는 내 우울증을 낫게 해주는 가장 큰 것들 중 하나다. 요리를 하면 전두엽을 계속 쓰게 되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면 우울할 틈이 없다. 더군다나 몸을 움직이는 일이기도 해서 '일석삼조'다. 어려운 것부터 시작하지 말고 쉬운 것부터 하고 틈틈이 기록으로 남기면 미술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는 나도 관련 예술을 하고 있다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뿌듯하다. 사실 레시피는 정말 쉽게 구할 수 있고 검색만 해도 나올 수 있지만 집안의 재료들과 원하는 맛은 천차만별이기에 임기응변을 연습하기에도 요리는 적격이다. 내가 추구하는 요리는 짧은 시간 안에 맛있고 가성비 좋은 요리다. 요리는 내게 여유를 찾아주었다. 그리고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나는 한동안 요리를 계속했다. 미친 듯이 만들었고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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