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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Sep 11. 2024

운수 좋은 날

내적으로 한 발짝 더 성장한 날

 여느 날처럼 컴퓨터 학원에 가서 연습을 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불안했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차, 약을 잊고 아침에 먹지 않고 나왔다. 하지만 기분이 약에 좌지우지되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약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하지만 갑자기 시작되는 감정기복과 처지는 기분, 확연히 느려진 수행 속도에 나는 속이 탔다. 시간을 맞춰서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데 평소보다 짜증이 솟고, 타인을 향한 인지왜곡이 시작되었다. '강사님은 표정을 보고 피하시는 건가.' '나는 이렇게 못하는 걸까.' '시험비만 버리는 아닐까.' 등의 예전과 같은 패턴의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익숙한 불쾌한 감정에 나는 강의실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죽기보다 싫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중도포기'.  다시 대학도, 내가 선택인 ITQ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하기로 멘탈 훈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냥 이런 날도 있나 보네, 내가 불안하구나, 또 잘하고 싶어 해서 조급해하는구나. 오늘은 그럼 좀 천천히 가자.' 이런 생각을 조금은 억지로 하면서 시간은 맞추지 못했지만 끝까지 완성해 냈다. 강사님은 시간만 좀 단축시키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주셨다. 과연 나의 인지오류였고, 강사님은 그저 강사님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해결책을 모색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연습법이었지만 시간을 재며 집에서 ITQ연습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컴퓨터 반에 같이 연습하는 언니와 스터디를 하기로 했는데 오늘의 감정기복으로 취소하고 싶어 졌다가도 그냥 하기로 했다. 내가 한 약속은 책임을 지는 게 맞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집에 가서 잠시 누워있으면서 오랜만에 뉴스를 봤다. 그리고 충격을 받았다. 의료, 교육, 출산 등 어느 하나 시끄럽지 않은 주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 어느 문제도 현실적으로 제대로 해결하려 하려는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응급대원, 간호사, 의사 중 힘들어 죽어나는 분들만 죽어나고 겉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포장하려는 사람들. 그리고 이를 바라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 나는 갑자기 대한민국에 사는 사실 자체에 마음이 아려왔다. 우리나라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뉴스를 오랜만에 보다 보니 관련된 영상들이 줄지어 나왔고 알고리즘은 나를 데리고 몇 시간을 삭제시켰다. 나는 분노하며 회의감도 들며 참 나도 주책맞다는 생각도 하며 세상에 관심을 더 가지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에 대해서는 항상 경각심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오랜만에 하게 되었다. 그리고 반면에 직업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몸을 바쳐가며 일하시는 분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이때도 '또 감수성이 폭발하는구나'하고 내 감정에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고 울었다. 마치 그냥 다른 일로 슬퍼서 우는 건데 매운 닭발을 먹으면서 매워서 우는 거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그 와중에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더니 아빠는 아빠대로 짜증 나는 일이 있었는지 버럭 화를 내시며 '어쩌라고.' 이 한마디를 던졌다. 나도 화가 나서 내 컨디션이 안 좋은 건 아빠한테 감기 비스무리한 걸 옮았기 때문이라고 아이처럼 화를 냈다. 그러고 나서 아빠와 같이 감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졌다. 아빠를 대할 때 또 거울을 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거울치료를 하는 느낌을 받고 집에 온 아빠에게 있는 대로 감정을 표현하고 물었다. 도대체 왜 화가 났냐고 말이다. 이때 우리 엄마는 또 아빠의 감정을 추측해서 내가 요즘 맥도날드에서 거의 맨날 점심을 사 먹고 대학원서도 한 장 버렸다고 그 돈이 아까워서, 내가 아빠 돈을 헤프게 써서 화난 거라고 하셨다. 나는 이에 엄마가 내가 쓴 전형료를 무지 아까워하면서 화가 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나도 그때 나의 성급함에 화가 났었다. 내가 상대방의 말에 화가 나는 이유는 내 안의 무언가가 건드려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돈의 결핍, 즉,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되지 않은 나 자신을 마주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빠나 엄마가 그 부분으로 인해 나에게 화가 났다는 사실도 못마땅했던 것이다.


 솔직하게 마음을 말했지만 표현하는 방식은 나도 엄마도 서툴었기에 다툼이 생겼다. 엄마는 극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그럼 나는 앞으로 나는 너에게 어떤 잔소리도 말도 조언도 안 할게. 근데 너는 그렇게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기분 나쁜 걸 다 표정으로 드러내고 화내는 것도 아닌 거야. 그리고 네가 처음에 부모한테는 하기에 부적절한 언어도 썼잖아." 나는 그걸 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솔직하게 내 의견을 말한 거라고 이번에는 굽히지 않고 웬일로 논리적으로 말하며 끝에는 내 잘못도 인정하고 사과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모두가 진정이 되고 난 뒤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도 했다. 어쨌든 내가 부모님께 아직까지는 경제적으로 의지하고 있는 게 맞으니까. 그렇다고 내게 아무런 계획이 없는 건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포트폴리오를 더 구체적으로 작성해서 영어과외를 해 볼 생각이다. 여튼 대화가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잘 해결된 것을 통해 내가 내적으로 성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동생에게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대상으로도 말이다. 떨어진 화상영어 면접도 내년에 다시 시도해 볼 것이고, 우선은 실력을 쌓을 때다. 나는 오늘 하루 내적으로 아주 많이 성장했다. 


 문득 1학년 때 내 감정들을 이야기로 연재해 보라던 교수님이 떠올랐다. 교수님이 그리워지면서 외로움이란 감정이 따라붙었고, 소속감이 그리워졌다. 하지만 미래에 언젠간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더 성장할 것이다. 1년 동안 받은 가르침은 내 안에 있고 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내적 치유를 향해가는 글을 쓰는 법을 가르쳐주신 교수님의 수업은 내게 안정감을 줬었다. 그리고 난 아직도 이렇게 글을 써나가고 있으며 더 이상 문예창작학과 학생은 아니지만 작가라는 꿈을 버리지 않았다. 언젠가 좋은 '언어 심리학자'가 되고 나면 나중에는 연구 보고서 같은 글 말고 원하는 글만 쓰며 작가의 꿈을 추구하고 싶다. 두 개 다 내 꿈이고 나는 욕심이 아직까지는 많고 포기할 수가 없다. 현실적인 자아가 덜 발달한 것은 맞지만 적어도 지금은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하기 위해서 이상의 자아를 놓고 싶지 않다.  내면의 생각을 존중해 주며 나 자신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더디지만 아주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아니, 내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터득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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