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몽도리 Sep 10. 2024

여유를 가지자

중대한 일을 앞두고 조급해지는 이유(과잉사고에 대하여)

 대학입시를 앞두고 나는 빨리 끝내버리고 편안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잘 해내고 싶었던 마음보다 컸나 보다. 6개의 수시 원서를 하루 만에 다 작성하고 결제까지 하고 보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대학 하나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실수다. 엄마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살펴보더니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거기를 왜 넣었니, 차라리 거기 넣을 바에는 안 되더라도 네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대학을 넣는 게 좋겠다."


모든 건 그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이미 수시원서를 다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하나를 없애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결제까지 마친 대학을 취소하는 건 어렵거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신중히 하라는 주의가 더해지는 것이고. 하지만 성급한 나는 그대로 일을 끝내버렸던 것이다. 어차피 안 되더라도 내가 가고 싶은 곳의 원서 한 장을 넣고 싶은 이유는 엄마의 말을 들어서가 아니다. 물론 그 말로 인해 '앗 나는 왜 그 생각을 못했지.'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넣은 마지막 대학이 나름 괜찮은 대학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정보 수집의 문제였다. 바보. 그건 그렇고 내가 원하는 대학 원서를 넣고 떨어진다면 더 이상 대학에 미련을 가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에게는 유종의 미, 그런 의미를 지니는 도전이었다. 그래도 방법이 있을지 전화를 돌려가며 방법을 찾을 생각이지만. 


 그날, 나는 불편함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중대한 일을 앞두고 사람이 조급해지는 이유는 뭘까. 그리고 당장 해결되지 않는 일, 혹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일에 집착하게 되는 이유 또한 무엇일까. 나는 또다시 웃다 상담사님의 채널을 보게 되었다. 나의 과잉사고가 문제였다. 엄마의 그 한마디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그 하루는 계속 그 말에 지배당했다. 정신적 과잉활동 상태가 지속되었던 나는 그냥 다 잊어버리고 마음 편히 결과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설마 6탈을 하겠어. 하나는 붙겠지. 하지만 붙더라도 아무 데나 붙는 건 싫어. 그리고 이제 곧 다가올 자격증 시험 대비에 힘을 쏟아야 하는데 대학 때문에 신경 쓰여, 그래도 내가 도전한 거니까 끝을 봐야 하니 열심히 하긴 할 건데, 으아 모르겠다.'


 내 뇌 속에 일어나고 있는 화학작용이었다. 불안이가 내 마음을 휘젓고 다녔다. 드디어 접수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수능도 남아있고 합격 발표는 11월이나 12월이다.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인데 쫄린다. 과거에 대한 후회는 아무 소용도 없다. 그러니 지금은 어떡해 어떻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할 때인 걸 알지만 그게 잘 안 된다. 어제는 그 과잉사고 때문에 침대에서 발을 동동거렸다. 엄마 아빠는 또 시작이네 하면서 웃고 있었다. 가까스로 심리상담사님 영상을 보고 수면에 좋은 우울 스페레이 (silent night)를 침구에 뿌리고 나서 잠에 들 수 있었다. 그다음 날 아침, 엄마는 유튜브를 보다가 웬일로(?) 감성적인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몽돌아, 엄마가 평소에 감정표현을 못하게 해서 미안해, 영상을 보니까 힘들 때는 힘들다고 표현해 줄 필요가 있다고 하던데 엄마는 네가 울지도 못하게 했잖아."


 나는 과거 상처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시기라서 얘기했다.


 "뭐, 괜찮아. 엄마도 엄마 사정이 있었고, 엄마도 사람인데 내 응석을 다 받아줄 순 없지. 내가 엄마한테 내 감정을 맡겨둔 것도 아니고 어쨌거나 이제 나 성인이잖아. 나 이제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래도 엄마는 내게 사과를 하셨다. 차차 양육방식에 대한 문제인식을 갖게 된 발전한 우리 엄마였다. 하지만 쉽게 변하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다. 사람이 고된 일을 하고 돌아오면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힘드니까. 그리고 세상에 완벽한 부모란 없다. 나여도 그럴 것 같다. 내 불안의 근원을 찾아가면서 해결방안들도 나오고 성격의 변화는 적어도 3~5년 정도는 걸린다고 말씀하시는 상담사분을 보고 나는 결심했다. "좋아, 내 계획은 11년 짜리니까..."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사람 하나가 변하지 않을 순 없을 터, 10년 동안 심리학에 내가 모든 걸 걸어볼 수 있을 나만의 이유이다. 가장 적합한 피실험자는 나 자신, 점점 범위를 넓혀갈 거지만 아직은 나에 대한 연구를 끝내지 못했으니 집중하자, 그리고 지금은 원서 접수가 끝났으니 컴퓨터 자격증 공부에 집중하자!! 내 손을 떠나버린 건 통제범위의 밖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