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을 써보자면...
나는 헤이즐이 암스테르담에 가서 피터 벤 하우튼에게 모진 말을 들었지만 어거스터스와 함께 암스테르담의 다른 곳에서 여행을 즐기는 부분이 가장 좋다. 시작은 좋지 않았어도, 목적을 달성하는 여행이 아니더라도 즐기고 깨달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건 성공한 여행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두 명이 암 환자인 것이 마음이 아팠지만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너무 보기 좋았다. 힘들 때 곁에 내 편이 있다는 것, 그것을 확인하면 사람은 정서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현재 나는 이 부분 때문에 걱정을 하고 있다. 원서를 넣고 아직 합격 발표가 나기도 전에 기숙사를 갈지 통학을 할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역시 나답다. 예기불안인 것 같다. 하지만 통학을 하자니 딱히 가족이 정서적 지원이 될 것 같지 않고, 기숙사에서 살자니 내가 늘어질 것만 같다. 통학을 하다가 가족들과 사이가 더 멀어지면 어쩌지? 내가 가족이랑 사이가 가장 좋았던 때는 떨어져 있다가 방학 때 잠깐 만날 때가 가장 좋았던 때였던 같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합격자 발표가 난 후에 손실을 따져보기로 했다. 각각의 경우 어떤 게 좋은지 말이다. 이게 영화와 무슨 상관이 있을지 궁금할 것이다. 내 처지는 '변화'라는 맥락에서 영화와 일맥상통한다. 헤이즐의 삶에 변화가 왔을 때, 그녀는 점점 도전하는 것이 많아진다. 나의 경우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기숙사 생활을 해왔었다.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게 힘들긴 해도 좋았다. 자유를 얻은 듯한 느낌이 들었고,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많이 불안해하신다. 내 우울증이 걱정되는 것이다. 이해는 간다. 헤이즐만큼은 아니더라도 내가 또 언제 감정적으로 무너질지 걱정이 되는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극복해내고 싶다.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아침시간도 확보하면서 스스로를 챙겨나갈 수 있는 기지를 발휘하고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편하게 집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부분도 좋다고 생각한다.
항상 같은 일상을 살다가 달라진 세상을 맞이한 헤이즐, 그녀의 변화는 단지 어거스터스라는 남자친구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었을 수도 있지만 어거스터스가 죽고 나서 헤이즐이 무너질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내면 안에서는 그것보다 더 한 무언가가 단단하게 생겼다. 새로운 삶에 대한 자신도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싹트는 것이다.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었고, 새로운 옷을 입어보는 등 도전을 계속하면서 표정도 밝아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헤이즐이 원래의 살던 환경을 버린 것도 아니다. 그녀는 집에서 생활하면서도 독립적이고 주관이 뚜렷한 멋진 여성이다. 그렇다면 나도 연습을 통해 가족이 있는 곳에서도 독립적인 사람으로, 학교에 있는 시간에도, 학교에 가는 시간도 활용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통학의 단점을 말한다.
하지만 결국은 다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것. 그리고 내 상황에 따라 기숙사 신청을 할 수 있든 없든 난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자신이 있다. 나는 경력자이자, 내 삶이 어떤 형태이든 신경 쓰지 않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통학을 한다고 해서 집에만 있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좋아하는 곳 (도서관, 카페)는 다 내 집 근처에 있는 곳들이다. 그리고 통학을 하면 내가 면허를 따야 할 동기도 만들어진다. 내가 돈을 모아 차를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다. (대중교통)이다. 하지만 헤이즐이 암스테르담에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 건강에 대해 염려했지만 최종적으로는 갔던 것처럼, 나도 이겨낼 자신이 있다. 기숙사도 2인 1실이면 룸메이트와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다른 단점도 있다. 하지만 결국 내게 다가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긍정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솔직히 짐 옮길 필요가 없고 내 동네를 떠나지 않는 통학이 좋긴 하다. 하지만 기숙사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최종은 자취와 취업이니까 둘 중 어느 것이 되더라도 나는 상관없다. 이제 영화에만 초점을 맞추자면, 이 영화는 내가 처음 우울증에 걸렸을 때 많이 본 영화 중 하나다. 내용이 감동적이기도 했고, 참 아름다운 이야기이도 해서 좋았다. 주인공들이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내게는 아직 행복을 주거나 정서적 지지가 되는 단 한 사람이 없지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해 보는 중이다. 그리고 탐구해 가는 중이다. 영화에서 나온 대사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대사가 있다. '모두에게 기억될 필요가 없어. 내가 너를 기억할 거야. 그거면 충분한 거야.' 맞는 말이다. 우리가 모두에게 사랑받아야 할 이유도 기억될 필요도 없다. 우리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과 기억에 남으면 그걸로 족하다.
그리고 나는 내 역사와 모든 걸 기록으로 남길 생각이니 누군가는 발견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다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러고 그걸 절대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태어난 이유는 정의할 수 없지만 태어난 이상 한 인간으로서 그저 잘 머물다 잘 가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하고 싶은 것을 나이에 상관없이 도전하고 작은 것에도 행복해할 줄 아는 인격을 갖춘다면 나는 그것에 만족한다. 내가 가장 가고 싶어 하던 대학은 우주상향 정도가 아니라 형용할 수 없이 높은 상향이었다. 하지만 그 원서를 넣지 못했다고 해서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처음이자 마지막 재수지만 나는 만족하기로 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얻어가는 것 또한 좋은 자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결제한 원서는 취소할 수 없어서 그랬던 것도 있지만 난 미련을 남기지 않고 단념하기 위해 한 장은 그걸로 넣고 싶었다. 하지만 실수로 가고 싶지 않은 대학에 원서를 넣게 되었고 지금은 부정적인 기분에서 탈출한 상황이다.
입시생의 작은 로망을 버렸달까.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서 독립하고 싶어서 기숙사에 가고 싶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다. 헤이즐이 아무리 빌고 빈대도 어거스터스는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지 못한다. 하지만 헤이즐은 어거스터스를 기억할 것이고 마음속에 담아놓을 것이다. 나 또한 2024년을 나의 21살 어둠을 잊지 않을 것이다. 마음에 담아놓고 힘들 때마다 꺼내볼 것이다. '이것도 이겨낸 나인데' 이런 생각을 하며 유연하게 상황에 따라서 적응하고 해결책을 찾는 태도로 살아갈 것이다. 100세 시대면 딱 4분의 1 살았다. Quarter Life Crisis,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하게 '대 2병'이 있다.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할 때 고려할 것과 책임질 게 하나둘씩 더해지는 나이. 어른도 아닌 것이 아이도 아닌 애매한 나이. 고민 끝에 나는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내가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안녕, 헤이즐'에서는 고통을 승화시키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수용이 된 것일까. 어거스터스의 죽음 후 헤이즐의 삶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에 나는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