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앞둔 동생을 보며 느끼는 것
카페에 와서 내 동생은 한 시간 동안 인스타에 올릴 사진만 고르고 있다. 물론 나도 사진을 찍고 리뷰까지 작성했지만 동생은 여기에 온 목적을 상실한 듯했다. 뭐, 별로 상관 쓰진 않지만 신경 쓰인다. 요즘 나는 의도치 않게 카페투어를 하는 것 같다. 내 동네에 좋은 카페들이 줄지어 생겨나기 시작했다. 멀리 가야 볼 수 있을 듯한 풍경을 담은 듯한 카페도 생겼다. 내 고향은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논밭과 평야가 다였다. 하지만 요즘 들어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조금씩 조금씩 변해가는 도시를 보며 나는 다른 곳에도 관심을 두고 싶어졌다. 부산에 가서 살고 싶었고 대학도 그곳에서 다니고 싶었다. 바다가 앞에 펼쳐져 있는 도시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으로 전공책을 팔에 끼고 다니는 로망을 상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상상과 다르다는 것도 안다. 이제 와서 보니 나는 세상에 대해 너무 적게 알고 있는 것 같다. 21살인데 모든 걸 알고 싶다는 건 욕심이지만, 한 동안 나 자신에게 집중해 있었다면 내 관심과 시선을 더 넓혀나갈 준비가 된 것 같다.
이는 좋은 신호다. 내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걸 의미하니까. 내일은 컴퓨터 학원에서 같은 반인 언니와 만나서 같이 자격증 공부를 하기로 했다. 우리 오빠와 동갑인 그 언니는 어떤 사람일지 궁금하다. 점심 약속까지 먼저 잡아준 것에 고마워하며 나는 잠시 가둬놨던 내 반경을 넓혀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우선 오늘 자격증 공부를 열심히 해야 내일 서로에게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잘하려고 하지 않으며 계속 포기하지 않고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게 중요하다. 나는 추석 내내 카페를 전전하며 ITQ연습을 했다. 그리고 저녁에는 맘 편히 놀았다. 덕분에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공부를 위해 준비하는 게 귀찮지 않았다. 공부와 일, 그리고 쉼 사이의 상관관계는 에너지 총량의 법칙을 따르는 게 분명하다. 인간도 에너지 배터리가 있는 게 분명하다.
가끔은 에너자이저가 되고 싶고 하루가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오늘을 제대로 보냈다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살며 저녁에 쉬어주면 그것만큼 편안하고 평온할 수가 없다. 물론 주변에서는 남들 쉴 때 같이 쉬고 남들 할 때 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하지만 다음주가 시험인 나와 내 동생은 공부를 해야만 한다. 이왕 할 거 즐겁게 하기 위해 원석 같은 카페를 찾아서 크레페를 배 터지게 먹고 사진을 찍어댔다. 대학에 가면 조별과제하기 딱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나였다. 행복은 생각보다 단순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것, 카페에 가서 원하는 자리에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 좋아하는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는 것,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것, 자신만의 방법으로 돈을 아끼는 것, 새로운 사실에 대해 공부하는 것, 다 행복의 범주 안에 있다.
그리고 인생에 행복보다는 고통이 많다는 것, 인생은 원래 고난의 연속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억울할 일도 덜 억울해진다. 그리고 항상 노력에 따른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력하는 이유는 노력하는 과정에서 남는 게, 노력한 것은 내 안에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분명 써먹을 수 있다. 물론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걸 알고 도전을 멈추면 안 된다. 때론 짜증 나고 지치는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그냥'해야 하는 이유는 나 자신을 조금씩 채워나가고 싶기 때문이다. 나라는 캔버스에 색을 칠하기 전에 짜놓을 물감을 준비하고 팔레트를 사는 것이 노력을 하는 과정이다. 내가 나중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나갈 때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것이다. 때론 아프지만 그건 물감을 짜내기 위한 힘이 필요할 뿐, 그림을 탄생시키기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다.
그러니 그냥 흘러가는 대로 항상 하던 대로 그냥 열심히 나아가보자. 흘러가다 보면 나도 연어가 되어 결국에는 티핑 포인트를 팔짝 뛰어 도달하고 넘어서는 시기가 올 수 있겠지. 새로운 곳들을 가보면서도, 다른 곳에 대한 기대를 가지는 것도, 나 자신에게 기대를 거는 것도, 욕심이 많은 것도 전부 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결국 나 자신을 있는 대로 수용하는 것이 답이다. 내 밑바닥도 내 가능성도 다 내가 마주해야 하는 것들이다. 많이 아팠으면 이젠 툴툴 털고 일어설 단계다. 그게 내가 원하는 길이니까. 아무리 아파도 나는 항상 이겨내 왔으니까. 결국 미래에는 내가 '대 2병'을 겪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그렇게 만들 것이다. 깜빡하고 필통도 안 들고 와서 내 펜을 쓰는 동생을 바라보며 한숨이 나온다. 펜도 2개밖에 안 들고 왔는데....
동생 얘도 사춘기를 지나가고 있는 중이라 머리가 혼잡한가 보다. 뭐, 나중에는 내가 저 꼬맹이도 도울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다음 주 시험이 있는 사람들은,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 추석에 음식을 해야 하는 사람들, 등 추석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은한 미소를 띤다. 그래도 추석을 좋게 보내고 싶기 때문에 저마다의 환경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가지고 그냥 살아간다. 나 또한 그러는 중이니 공휴일이란 개념이 나중에는 미미해진다 하더라도 억울하지 않다. 어렸을 때와 지금의 내가 가지는 차이이다. 나는 지금 평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