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과 새내기양에서 영문과 새내기양으로
우울증으로 자퇴를 하고 나서 1년 동안 다양한 일들이 있었다. 괴로웠고 힘들었으며 행복했고 성숙해졌다. 문예창작학과 23학번에서 영문학과 25학번이 됐으며, 새로운 시작을 눈앞에 둔 나는 이제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이미 나아가고 있지만 더 크게 도약을 해보려 한다. 최근에는 글씨체를 예쁘게 바꾸고 싶어 필사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덕분에 필사에 좋은 펜도 찾았고, 꾸준하게 미션도 달성하는 근성도 생겼다. 힐링이 되는 시간이었고 전혀 스트레스받지 않는 좋은 기분이었다. 전 학교의 동기들은 다들 나를 응원해 줬다. 절친들은 내게 향후 계획을 물었고 축하를 해줬다. 어찌 보면 되게 많은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1년 동안 고등학생으로 회귀한 듯한 기분이 든다. 우울했었던 순간들은 기록으로, 책으로 남겼지만 흐릿흐릿하다. 시간이 그만큼 날아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22살에 다시 새내기가 되다니... 하지만 내 결정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이번 1년은 내게 있어서 교훈이었고, 아픔이었고, 도약이었다.
원하던 대학에 붙었고 더 이상의 편입도, 재수도, 전학도 하지 않을 생각이다. 이제는 꾸준히 나아가보고 싶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내 친구들이 어디에 있던 상관없다. 새로 사귈 친구들, 여전할 내 오랜 벗들은 나와 오랫동안 함께할 것이다.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미래의 나도 다 함께 할 것이다. 예전에는 아팠던 과거의 나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모른 척 외면했었다. 끌어안고 함께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기에 과거에 머물던 기억들과 그와 연관된 사람, 환경, 좋았던 일들 모두 잊어버리려 했다. 머릿속에 선택적 지우개가 있었던 샘이다. 남아있던 글씨와 선택적인 지우개. 아마 머릿속에서 모든 걸 지워버리려고 한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너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맞다, 가장 힘들다고 생각한 해의 이전 연도에는 항상 거대하고 감당 못할 행복이 존재했다. 너무 좋아서 항상 미래가 불안했던 그런 행복 말이다. 내게 이런 행복이 와도 되는지 의구심을 가질 정도의 행복, 우정, 꿈 등이 존재했다. 점점 커져갈 시기에 어둠이 몰려와 결국 머릿속에서 선택적 지우개를 꺼내 들었고 결국에 그로 인해 사라진 건 추억, 배움, 찬란했던 내 시간들이었다.
이제 와서 꺼내보니 이렇게나 빛나는데 왜 없애려고만 했을까. 역설적이게도 어둠이 찾아올 땐 그 아름다움이 가장 아팠기 때문이다. 과거의 흔적들이 내가 모아놨던 편지 속에, 파일에 사진에 들어있다가 예기치 않게 한 번씩 툭툭 튀어나와 내 마음을 흔든다. 내게 있었던 친구들과 그들의 온기, 행복했고 같이 힘들었던 시간, 치열했던 고민 등 나는 아팠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전부 기록으로 남겨두었다. 사진도, 글도, 내가 했던 프로젝트나 발표물도 다 모아두었다. 그 파일을 열어보면 행복과 슬픔이 공존하는 신기한 현상을 겪을 수 있다. 내가 피하려고 했던 것이 얼마나 빛나는 것이었는지 이제 와서 깨달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볼 수 있는 대담함과 용기가 생긴 현재의 나를 바라본다. 잊지 않기 위해 글로 쓰고, 기록물로 남긴다. 과거의 나를 버리는 게 아니라 안고 현재의 나와 함께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과거는 결코 버리는 게 아니다. 그저 현재에 집중하느라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며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적으로 확인하지 않을 뿐이다. 미래에 가서 다시 한번 돌아볼 순간이 올 때, 과거를 보고 교훈과 감동을 얻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려 한다. 아픔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니, 정말 죽을 만큼 힘든 고난도 결국은 꽃을 피우기 위한 거름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피어난 꽃은 그 여느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해야 다음 고난을 더 쉽게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작별을 고한 뒤, 함께하기로 약속한다. "안녕, 문창과 새내기양. 고생했어. 함께 새로운 영문과 새내기양을 맞이하자. 내 눈 앞에서 사라진다 해도 기억하고 있을게. 가끔 들여다볼 테니, 언제든 내 안에 있어. 절대 외면하지 않고 다시 찾아올 테니, 너와 있었던 기억들을 절대 버리지 않을게. 많이 미안했고, 고마웠다. 나중에 다시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