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기꺼이 지는 수밖에...
내가 바라는 무언가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했다.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가지고 싶다고 결심했을 때, 내 마음속에는 갈등이 일어났다. 취업과 이상을 쫓는 것, 그 둘이 자꾸만 부딪혔다. 엄마는 자신이 본 드라마에서 문예창작학과를 다니는 한 인물이 쓰리 잡을 뛰며 이리저리 일할 때, 친구가 왜 그렇게 사냐고 물어봤을 때, 그 과는 그럴 수밖에 없는 과여서 돈을 벌기 위해서 가는 건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과연 나는 그 사실을 몰랐을까. 그때는 외면하고 싶었다. 좋아하는 걸로 돈을 벌면 그만이라고 생각했고, 그냥 좋아서 선택했다. 현실을 바라보기가 너무 무서웠고, 마음이 불안정했다. 그래서 끌리는 곳을 택했다. 1년 정도는 꿈만 같았다.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설렘에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많은 걸 배워서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1년이 지나자마자 모든 게 바뀌었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걸까. 하나 둘 학과생들이 떠나기 시작했다. 나는 쓸쓸함과 고독을 느꼈다. 왜 우리 학과 부스에는 고등학생들이 보러 오지 않는 건지 왜 다들 떠나는 건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굳건한 의지를 가진 내 동기들을 보면서 나는 남고 싶었다.
하지만 2학년이 되자마자 나는 더욱 안주하기 전에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자신이 없었다. 자존감이 바닥을 치면서 내 글이 꼴도 보기 싫어졌다. 아직 나는 어리다는 말이 와닿지 않았고, 오빠는 내게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1년 쉬면, 취업도 1년 늦어진다고, 친구들은 자퇴한 내가 부럽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은 하고 싶어도 불안해서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또다시 재수생이 되어 불안감에 떨다가 이내 내 내면 안에 복잡하게 꼬여 있는 실을 풀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하는 책 출판 행사에 참여했고,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유튜버들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우울증을 이겨내기 위해 여러 노력을 했고, 지금도 하는 중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세상에 공짜는 절대 없다는 것을. 상담선생님은 내 이야기 속에 내가 아니라 엄마가 주인공이라고 했다. 사실 내 머릿속에는 엄마가 가끔 지령을 내리고 있다. 감정일기를 썼는지 확인하겠다고 검사받으라고 했을 때 나는 싫다고 했지만 결국 검사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적기 싫어 하루 빼먹은 날에 핀잔을 들을 때면 당당하게 감정일지는 내 관할이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계속 잔소리를 하시는 언행불일치의 모습을 보이셨다.
통제적인 부분은 엄마의 성향이라고 이해하며 그냥 내가 이해하기로 했다. 대신 안의 내용은 보지 않겠다고 스스로 말씀하신 부분은 엄마가 지킬 수 있길 바라며 계속 상기시켜 드리고 있다. 다들 편입, 재수, 전과 등 방법은 있다고 너무 쉽게 말하는데 그게 잘 될 것 같았으면 모두 편한 마음으로 자유롭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내게 학과 선택을 처음부터 잘하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떼를 썼다. 물론 나는 내 지난 1년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만큼 행복했던 1년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행복했다. 하지만 행복했던 만큼 그다음에 올 후폭풍은 너무 아프고 쓰렸다. 졸지에 나는 무언가 하나를 시작해도 끝맺음을 못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중간에 자꾸 멈춰 선다는 얘기다.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가족을 포함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나는 재점검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이 많기 때문이다. 새 대학에서는 심리학을 복수 전공하고 싶었는데 겁이 났다. 1학년 때처럼 너무 과하게 달리다가 또 넘어져서 멈추면 어떡할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결국 부전공으로 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더 배우고 싶은 과목이니까. 비겁한 건가, 내 선택이지만 나는 또 회피를 선택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주체는 나이기에 내 정신건강을 고려해 나에게 맞는 선택을 하는 것조차도 내 관할이다. 취업은 문과든 이과든 할 사람들은 다 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내가 가는 길을 믿기로 했다.
나는 영어와 심리학을 더 탐구하고 싶고 글도 더 잘 쓰고 싶다. 관련된 자격증을 많이 따고 싶고 다양하게 따고 싶다. 솔직히 자격증 헌터가 되고 싶고, 다중언어구사자가 되고 싶어서 남는 시간에 쉴 생각이 없지만 또 멀리 내다본 것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제는 신중하게 정해서 더 이상 멈춰 서고 싶지 않다. 책임을 지고 싶다. 결과가 어떻든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성숙한 어른으로 거듭나고 싶다. 그게 내가 지향하는 바다. 자격증도 공부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것들로 가득 채울 것이다. 이것저것 중구난방으로 따는 것 같아도 내가 따고 싶어서 딸 것이다. 그래야만 내 것이 되기 때문이고 노력한 것들은 성공을 보장해주진 않지만 흔적을 남긴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도 계란이 바위에 흔적을 남기는 것처럼 말이다. 조급함을 버리는 게 그렇게 힘든지 몰랐다. 나는 꿈속에서 아직도 고등학교 때를 꿈꾼다. 이제는 대학교 꿈까지 합쳐졌다. 두려움이 꿈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내가 포기했던 것들에 대한 두려움 말이다. 끈기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제일 듣기 싫다. 너무 아프지만 내 결점과 실수, 잘못 등 내 나약함을 직면하기로 결심한 뒤, 하나하나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아갈 수 있었고 잘 되지 않는 것도 겸허히 인정하게 됐다. 나는 설명을 잘 못한다. 과외를 할 때마다 좌절감이 느껴지는데 동생에게 더 쉽게 설명해 줄 방법을 찾다가 내가 처음부터 영어를 다시 배우는 것을 방법으로 택했다. 내가 원하는 교재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내가 원하는 장소를 골라서. 그래서 나는 매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도서관에 간다. 일찍 가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자리가 없는 곳이기에 아침에 일찍 설거지를 해놓고 버스를 기다리게 된다. 정말 싫었는데 이제는 학교가 그립다.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중요한 거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학교의 시스템 속에서 얻는 것들의 수가 결정되는 것이다. 대학교는 기업이지 초, 중, 고가 아니다. 각자도생과 협력, 그뿐이다. 잔인해 보일지 몰라도 사회에 나가기 전 훈련이니 꼭 거치고 싶다. 한때는 진지하게 군대에 가면 내가 더 단단해질까 생각해서 여군에 지원해 볼까라는 철없는 생각도 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충동적으로 선택하면 대가가 따른다. 어디를 가든 후회는 남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내가 후회를 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처음에는 무조건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후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었다. 욕심이 많으면 후회를 결국 하게 된다. 그래서 두 번째로 생각한 것이 내 장점을 살려서 전공을 택하고 부전공으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워보면서 자격증 헌터가 되기로 한 것이다.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재미를 느껴보는 실험과도 같은 삶을 살자는 것이다. 후회가 따를 것이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첫 번째처럼 그저 고3 때의 충동적인 결정은 하지 않는다. 아무리 내가 기분파라도 내 삶에 대한 애착은 강하기에, 행복하기만 한 것은 영원한 행복이 아닌 걸 알기에 새로운 길 위에서 나는 좀 더 차분한 결정을 하려 한다. 선택에 있어서 머리가 너무 아프지만 결국 내가 굳게 한 선택은 뒤돌아보지 않고 시행한다. 2024년 동안 나는 많이 울었고 힘들었다. 무력감과 우울감에 지배당했었고, 이는 고등학생 때 겪었던 것과 차원이 달랐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서 남에게 내 모습을 드러내기 싫었고 내 모습을 직면하기 싫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책으로 내 민낯을 다 꺼내놓고 나니 한결 편안해졌고, 내가 완벽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도, 남의 속도에 맞춰 살 필요도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엄마의 말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무조건 엄마말을 무시할 필요도 없다. 다만 항상 결정은 내가 할 것, 그리고 건강한 정신을 위해서는 평생 훈련이 필요하고 배움이 필요하단 것, 그것만 인지하고 있으면 제대로 된 항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