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하지 않기로 했다, 감정에 정직해지기 위해서
오늘 동생이 수학여행을 갔다. 아주 행복한 얼굴로 아침 일찍 나가는 걸 보니, 중학생 때 나의 수학여행이 떠올랐다. 동생에게 잘 다녀오라고 했고, 난 오늘 혼자 요가 학원에 갔다. 몇 달 동안 내내 혼자 다니다가 또 그다음 몇 달 동안 내내 동생과 같이 다녔다. 동생을 챙겨줬고, 가끔은 귀찮아도 같이 다니는 게 즐거웠다. 아는 사람이 없는 학원에서 운동을 같이 하면서 웃을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동생이 없어도 요가는 별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전에 동생이 없었어도 무표정하게 할 것만 딱 하고 집에 갔으니까. 하지만 딱 하루, 오늘 없었는데, 나는 평소와 다름을 느꼈다. 요가가 힘들게만 느껴졌다. 내가 학원에 도착하자마자 선생님은 동생은 어디 있냐고 물었고, 나는 그녀가 수학여행을 갔다고 짧게 답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요가를 하는데 뭔가 마음이 허전했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그냥 동작을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데, 외로웠다. 맞다, 이 감정은 외로움이다.
이따금씩 우울증이 심했을 때 방에 혼자 처박혀서 느꼈던 고립감이 다시 올라온다. 뼈가 시릴 정도의 외로움은 무소속감에서 나온다. 나는 안정을 추구하다가 학교를 나오는 모험을 택했다. 새로운 학교에 갈 거지만 난 단 한 번도 지금까지 초, 중, 고 내내 모범상을 안 받은 적이 없었다. 자퇴는 내게 있어 충격적인 일이었다. 내가 벌인 일인데도 실감이 나지 않았고 나중에서야 실감이 났을 때는 내가 잃은 것들이 보였다. 내 친구들, 그들과의 라포, 존경하는 교수님, 그분들의 수업,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생이라는 타이틀과 나 자신. 다행히 나 자신을 점점 찾아가고 있는 중이고 새로운 내 모습을 발견하며 발전하는 중이다. 하지만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바로 내 마음속에 있는 철문이다. 나는 내 기준의 선을 벗어난 사람을 가차 없이 내친다. 나도 모르게 거리를 두게 된다. 내게 잘못을 했건, 나랑 안 맞는 사람이라고 느껴지건 상관없이 서서히 멀어지기를 택한다.
이때까지 나도 모르게 많은 인연들을 잃었다. 한 때는 인관관계를 잘 유지해보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으나 에너지 소모가 너무 심해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겠다는 명목으로 일정 부분 피해왔다. 그러면서 나는 고독을 잘 즐기고 있다고 합리화했다. 사실 고독이 아니라 외로움을 지독하게 느끼는 것이었다.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고독에는 성숙이 있다. 외로움은 어린아이의 마음이 담겨 있다. 동생이 내일모레 수학여행에서 돌아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자랑을 할 것이 뻔하다. 나는 옆에서 들어주면서도 속으로 '네가 그렇게 노는 동안 나는 혼자서 힘들고 외롭게 운동했다.' 이렇게 성숙하지 못하게, 언니답지 못한 그 마음을 숨길 테지. 고작 동생 때문에 외로움을 자각하게 된다는 게 자존심이 상한다. 학교에서 나오고 나서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휴학을 했다고 치고 재정비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이 주변에 있건 없건 때때로 나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이게 소속감의 상실로 인해 일어나는 것인지 아니면 내 안의 다른 결핍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동생과 함께 있으면 그 아이의 밝은 성격에 다들 좋아하고 나도 타인과 편해지기에 자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고 동생을 위했다. 비록 좋은 언니는 아니지만 나는 내 동생을 무지 아낀다. 너무 짜증이 난다, 자퇴로 인한 우울감 때문에 하루 동생이 같이 학원에 안 간다고 외로움을 느낄 정도로 내 멘탈이 약해진 걸까. 사람들은 나를 그저 그 아이의 언니로만 보는 걸까. 밉고 짜증 나고 귀여운 내 동생은 중2다. 키가 작아서 아직도 꼬맹이 같다. 하는 짓은 참 중2 덥긴 하다. 없는 동안 동생 과외도 안 해도 되고 챙겨주지도 않아도 돼서 좋아야 하는데 허전하다. 문득 오빠가 한 말이 떠오른다. 지금까지 살면서 전화해서 부르면 달려와주는 친구 하나 없으면 잘 살지 못한 거라고. 나는 친구들이 힘들어할 때만 내게 전화를 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를 해 주고 하나밖에 없는 친구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거나 톡을 해서 만나자고 하면, 그들은 보통 너무 멀리 있거나, 어떤 이유로 거절한다. 내가 이렇게 되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애초에 인간관계에 회의적이었기에, 순진하고 성급하고 사람 보는 눈도 없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기에 나는 낯선 사람이 너무 불편하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항상 곁에 가까운 사람이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연락할 좋은 친구들은 3명 정도 있지만 나머지는 전부 연락이 끊겼다. 지독하게 외로움을 느낄 때서야 나도 인간으로서, 사회적 동물로서,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하고 함께하는 즐거움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바뀔 점이 많다고 생각해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여러 사람들 사이에서 겉도는 것만 같다. 1:1 관계는 자신 있는데 과거의 상처와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 데이터 베이스를 깨 부시기가 힘들다. 부셔도 잔재는 남아 있으니 말이다.
나는 그들에게 좋은 사람이 될 자신은 있는 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주기도 사실 바라는 것 같다. 타인도 나에게 거리를 둔다고 자주 착각한다. 밀어내고 혼자 있는 게 편하다. 그런 내 모습을 마주하면 왠지 모르게 서럽고 눈물이 난다. 동생이 그래서 밉고 부러울 때도 있었다. 나보다 6살이나 어린애를 부러워하니 참 별 꼴이다. 하지만 틈만 나면 누가 불러서 만나러 나가는 동생을 보면 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가족 말고, 다른 관계에 있어서도 욕심이 생기지만, 나와 안 맞다고 생각이 드는 사람들을 그러려니 하고 쿨하게 대하는 게 쉽지 않다. 노력하고 있어도 한 없이 서툰 것만 같다. 과거에 나에게 상처를 줬던 친구들과 단칼에 절교해 버리고는 스스로 친구가 사라졌다고 후회했었다. 분명 나에게 상처를 줬으니까, 나랑 안 맞으니까, 상황이 좋지 않으니까 끝내는 게 맞는데, 왠지 내 마음속의 문 몇 개가 잠겨 버린 느낌이다. 상처받는 게 무섭다기보다 상처를 받을 때 마주하는 내 추한 모습을 들여다보기 싫었던 것이다.
그때 드는 감정들은 전부 성숙하지 않은 감정이라 생각했기에. 그때 드는 생각들은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도록 냉랭한 것이었기에. 과거는 과거고 현재는 현재지만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래도 편견을 가지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요가 선생님들은 내 동생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관심을 가져 주신적이 있었다. 내가 네일을 했을 때, 그걸 보고 예쁘다고 해주신 요가 원장님을 잊고 있었다. 물론 관심을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동생이 아니었으면 여기서는 투명인간인 것만 같았다. 동생은 거기서 가장 어리고 귀여웠으니까. 인사성도 밝고 친화력도 좋았으니까. 그런 밝은 모습이, 나에게 주는 긍정적인 영향이 좋았다. 우라는 나이 차이는 많이 나지만 대부분의 것들을 함께하고 생각도 공유했다. 가족이자 자매이니 서로를 잘 이해했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어 싸워도 금방 풀렸다, 하지만 때로는 서로가 없을 때 허전해했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다가도 누가 멀리 가 있게 되면 (예를 들어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타 지역 기숙사에서 살았을 때, 동생은 내가 많이 보고 싶었다고 한다.) 허전했다. 예전에는 그런 감정을 무시했고, 아니라고 부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인정하고, 아, 내가 학교를 나와서 그냥 좀 많이 외로운가 보네. 이렇게 바라보고 생각과 거리를 둘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도 헷갈린다. 내가 내 친구들을 그리워하는 것인지 친구들과 함께 있던 그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것인지 말이다. 전화로 얘기를 하다 보면 재밌지만 막상 만나면 어색할 때도 있고, 그 반대일 때도 있었다. 고치고 싶은 게 너무 많았지만 도망가는 게 습관인가 보다. 혼자가 제일 편하다고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다. 나는 외롭다. 어디에 있어도 누구랑 같이 있어도 외롭다. 내일이면 그 감정을 잊고 평소처럼 살아가겠지만 오늘 문득 티비를 보다가 나랑 같이 맥주를 마시고 싶은데 비염 때문에 못 마신다는 아빠의 말에 나도 술잔을 기울이고 싶었다. 아빠도 외롭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냥 느껴진다. 아빠의 말에서, 행동에서 다 드러난다.
아빠 판박이인 나도 다 드러나는 게 아닐까, 두렵진 않다. 내가 내 감정 느끼겠다는데 부끄럽지도 않고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으니 너무 깊게 빠져 있지 않고 대신 어딘가에 털어놓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러니 외로움 말고 고독으로 성숙의 과정을 거쳤으면 좋겠다. 다가가는 건 아직 용기가 조금 부족하다. 이미 노력은 했지만 이전보다 더 나아질지는 모르겠다. 한동안 너무 혼자 행복하게도 슬프게도 살아서 그런지 누군가와 하는 대화 하나하나가 소중해졌고 재밌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만나러 이리저리 다니는 것은 아니다. 그건 결핍을 채우기 위해 하는 일이니까. 잘못된 일은 아니지만 나는 내 결핍조차 사랑한다. 무조건 결핍은 채워야 한다는 강박이 없다. 그저 '웃따 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혼자여도 괜찮고, 함께여도 괜찮은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길 바랄 뿐이다. 나 자신을 마주한 이상 바꿔나갈 부분들이 존재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삶이 불만족스럽진 않다.
나는 혼자도 행복하고 함께도 곧 행복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