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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도리 Nov 08. 2024

내 안에 남아있는 것들

내 안에 남아있는 위로와 응원, 그리고 가르침

  비록 스승의 날은 아니지만 나는 책을 홍보하는 김에 그리웠던 선생님들과 교수님에게 안부를 전하게 되었다. 한 번 찾아오라는 선생님들도 있었고 책을 꼭 보겠다고 하시는 분도 계셨고, 잘 될 줄 알았다면서 응원해 주시던 분도 계셨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문예창작과에 가겠다고 해서 상담을 한 담임 선생님도 나의 작은 도전에 큰 찬사를 보내 주셨다. 중학교 국어 선생님과 중3 담임 선생님은 내가 힘들 때 나에게 나는 말을 잘하는 재주는 없어도 글을 잘 쓰지 않냐고 용기를 주셨던 분들이다. 나는 그 용기에 힘입어 글쓰기 대회란 광적으로 찾아 도전했었고 상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갔을 때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님들의 응원에 힘입어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잘 해낼 수 있었다. 그때 내가 만든 나만의 별칭은 '초긍정 오뚜기'였다. 긍정의 힘으로 몇 천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가 되고 싶어 만든 별칭이었는데 영어 프레젠테이션에서 'Roly Poly Optimist'라는 이름으로 제출했던 게 기억난다. 그 대회에서는 내 모든 아픔을 쏟아내고 모든 기대를 버린 채 올라가서 편한 마음으로 발표를 했다. 마지막에 각자 열심히 준비해 왔지만 너무 결과에 치중하지 말고 과정을 중시하며 고생한 우리들에게 박수를 쳐주자고 했는데 그 말을 마지막에 영어 선생님께서 너무 마음에 들어 하셨다.

    나는 내가 힘들 때 내 말을 계속해서 여러 차례 끝까지 들어주신 고3담임 선생님과, 끊임없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시고 가끔 수업에 대해 느슨해지고 무기력해지는 걸 막아주신 고2 담인 선생님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모두 내가 힘들었을 때 함께 했던 선생님들이다. 선생님들이 나를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계셨다는 게 너무 좋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 강의가 마음에 들어서 학구열이 불타오르게 했던 교수님은 내 1학년을 풍요롭게 만들어주셨다. 과제를 미리해와서 다른 동기들의 눈총을 받기도 한 시간이었다. 교수님은 여리고 따뜻한 분이셨다. 나는 교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 내게도 이렇듯 나에게 따뜻한 영향을 준 어른들이 계셨다. 그저 내 힘듦에 매몰되어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을 뿐. 대학교 2학년 때 극심한 우울증으로 기숙사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때, 교수님께 상담 요청을 정말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난 그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교수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고, 1학년 과탑이었던 내가 그렇게까지 무너졌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싫었다. 맞다, 나는 잘 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이상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대학은 초, 중, 고와 달라서 교수님들은 항상 바쁘고 학생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시지 않을 거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한 어른으로써, 인생 선배로써 대했다면 좀 달랐을까. 나에게 교수님들은 참 어려운 존재였다. 선생님들처럼 친근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경계가 나눠져 있는 것 같았다. 때로는 무심하게 보이기도 했고 이제 더 이상 우리들은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각인시켜주시기도 했다. 왜 그렇게 잘 보이고 싶어 했을까. 결국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인데 말이다. 예전에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교수님들은 선생님이 아니다'라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유대감을 형성하고 싶었다. 배움에 있어서 스승이었기에 그리고 실제로 내가 어떤 길을 택하든 무조건 응원해 주시는 분들도 계셨기에. 그래서 소설가이신 교수님께 내 책 원고를 보여드렸고, 나는 합평대신 장문의 위로를 받았다. 때때로 연락을 하고 싶은데 접점이 없다. 또 책을 내면 안부를 건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교수님 대 대학생이 아니라, 무조건 학점을 구걸하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라 어른, 인생선배와 사회 초년생으로 만나고 싶다. 그저 상업적인 기업에서의 종사자가 아니라, 스승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억지로 듣는 수업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수업을 들으며 시너지를 발휘하며 친하게 지내고 싶다. 어려울 것 같긴 해도 결국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닌가, 사제지간이다. 비록 대학에서 벗어나면 그저 떠나간 한 수강생일 뿐이지만 초, 중, 고도 졸업하고 나면 졸업생일 뿐이지만 받은 가르침, 온기는 남아있다. 우리는 저마다 감사했던 스승님들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물론 우리를 힘들게 했던 스승님들도 계실 것이다. 하지만 좋은 스승님들이 있었기에 다른 곳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선입견은 만들지 않을 수 있다. 고등학생 때는 유대감을 형성하기가 어려웠다. 중학생 때도 마찬가지다.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해서 역효과가 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자, 용기가 생겼고, 그 용기에 나는 다른 어른들과의 유대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지나간 시간들이고, 배움이고, 감정이지만 조금씩 간직할 테니 그분들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행복하시기를, 언제나 밝은 웃음을 지니며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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