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는 마인드셋
나는 평화시위(촛불시위)를 했었던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았다. 또한 간디와 아웅산수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시위들이 전부 평화적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해서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의해 답답함을 느낀다.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딱히 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민다. 내가 지원한 대학들이 뉴스에 나오고 있다. 시위, 투쟁, 체포 등 여러 키워드로 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왜 당연한 것들을 투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일까.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나는 어제 생에 마지막 수능을 쳤다. 수능을 치고 나서 우연히 뉴스를 보게 되었다. 보고 나서 한 동안은 보고 싶지 않게 되었다. 엄마는 평화시위를 하고 싶어도 그렇게 하게 놔두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길거리 투표를 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다.
더불어 소설로 조금씩 사회문제들을 녹여내고 있다. 대학생들이 겪는 총체적인 문제나 갈등, 힘듦을 다 담아내기에는 4년의 시간 정도가 필요할 듯하다. 나는 특정 당을 옹호하지 않는다. 그냥 정치 쪽에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은데 가만히 두고만 보기에는 열불이 난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들도 하나씩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 실망을 하게 되었다. 12년을 공부해서 대학을 가고 취업준비를 하고 쳇바퀴 같은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며 그래도 나름 조그만 행복을 찾아가며 버티는 사람들에는 우리 오빠와 바다언니(마음이 바다처럼 넓어서)도 포함되어 있고, 죽어라 열심히 일하는 우리 아빠와 엄마도 포함되어 있다. 대학생들이 현재 하는 시위가 불법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가법령정보센터에 의하면
제3조(집회 및 시위에 대한 방해 금지)
①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를 방해하거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아니 된다.
②누구든지 폭행, 협박, 그 밖의 방법으로 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나 질서유지인의 이 법의 규정에 따른 임무 수행을 방해하여서는 아니 된다.
③집회 또는 시위의 주최자는 평화적인 집회 또는 시위가 방해받을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면 관할 경찰관서에 그 사실을 알려 보호를 요청할 수 있다. 이 경우 관할 경찰관서의 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보호 요청을 거절하여서는 아니 된다.
라고 쓰여 있다. 혼돈이다. 나는 이번에 대학에 가면 학구열을 불태우고 싶었다. 후회하지 않을 정도로 노력해서 내 미래를 위해, 취업을 위해 노력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회의감이 들었다. 그리고 예전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던, 더 큰 시야를 가지고 싶다는 마음에 불이 붙었다. 나는 해외에 취업하고 싶어서 해외기업 자격요건을 찾아보았다. 쉽지도 않고 세금도 더 내야 하고 돈도 많이 모아야 한다. 또 엄마한테 얘기해서 호주에 사는 이모한테 받아달라고 해달라고 할 수는 없다. 내 힘으로 해내고 싶다. 우리나라의 롤모델은 스위스라고 한다. 하지만 전혀 롤모델처럼 가고 있지 않다. 나는 해외에 가서 많이 배우고 싶고 경험하고 싶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더 넓어지면 다시 돌아와 계란을 바위에 마음껏 던져보고 싶다. 계란 노른자와 흰자가 바위를 다 덮을 때까지. 촛불집회는 평화시위였다. 간디와 아웅산수치처럼 어이없는 사회와 현실 앞에 당당히 반대의사를 표하면서도 절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마틴 루터킹 주니어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들도 마찬가지로 그러려고 하나 한쪽에서 진압을 시작하면 자신을 보호할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나는 그저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기를 바랄 뿐이다.
한 때, 철이 없고 어렸을 때, 나는 우리나라가 최고인 줄 알았다. 의료체계도, 교육도, 급진적인 성장도, 역사도, 한류도 한없이 자랑스러운 나라라고 힘들어도 이만하면 정말 잘 사는 나라이며 화상영어를 할 때도 외국 선생님들 모두가 우리나라에 오길 바랐다. 하지만 이제는 좋으니 우리나라에 오라는 말을 못 하겠다. 오히려 내가 해외에 갈 만한 좋은 곳이 있는지 묻고 싶어졌다. 나는 여성으로서 남자를 차별하고 싶지도 않고 그저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는 존재로 봐지기도 싫다. 그렇다고 폭력적인 시위를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평화적인 시위를 과잉진압하는 걸 두고 보기도 싫다. 난 그저 대학에 가서 내 인생을 바꾸고 싶었다. 학구열을 불태우고 싶었고, 전성태 교수님 같은 좋은 스승을 또다시 찾고 싶었다. 교수님이라면 이런 시국에 어떤 글을 쓰실까. 우리에게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글을 쓰라고 하실까. 이제는 자퇴생으로써 알 길이 없지만, 꼭 다시 뵙고 싶다. 세상이 다시 무서워졌다. 이제 겨우 일어나서 뚜벅뚜벅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실망과 기대 속에서 헤매며,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뉴스를 보면 화가 나고 눈물도 나고, 뭔가라도 하고 싶은데 엄마는 우리 코 앞에 닥친 일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아빠는 절대 시위는 참가하지 말라고 하며, 순경 출신이었어서 잘 안다고, 혹여 나중에 시위하다가 맞을 수도 있을 거라고 하신다. 난, 좋은 나라에서 살고 싶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힘들게 낳아주신 땅이고, 5000년의 역사가 있고, 멋진 문화를 일구어낸 터전이다. 내 고향에 있는 봉하마을과 가야 유적지들은 내게 자부심을 주며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항상 세상이 좋을 수만은 없는 법,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루하루를 그저 열심히 버텨내며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내 나라니까 자랑스럽게 여기고 싶다. 힘들었는데, 그래도 이제 살 이유를 찾았는데, 나라 탓만 하고 있기는 싫다. 나는 발전하고 싶으니까. 나는 단단한 몽돌이 되기로 했으니까. 무책임한 태도가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보았으니 나도 이제는 책임감 있는 어른이 되려 한다. 내 선택에 대해서 끝까지 책임지는 사람.
엄마는 우리 부녀가 책임감이 없어도 너무 없다고 어떻게 중도포기를 그렇게 많이 하냐고 했지만, 아빠는 늑골이 부러져도 복대를 차고 일하러 나갔다. 아빠의 나이에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병가를 내면 잘리기 때문이다. 이게 현실이다. 회사 측에서는 최대한 조심해서 일하라고 하지만 아빠가 그저 씁쓸하게 입을 앙다문 모습이 상상이 된다. 소심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는 책임감을 단전에서 끌어내는 아빠 때문에 눈물이 난다. 거저께 취직을 한 바다언니는 바빠져서 나와의 약속을 2주 뒤로 미뤘고, 친오빠는 회사에 미래가 없다며 이직을 준비하겠다 하며, 대학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엄마는 전화로는 잘 생각했다고 했지만, 나와 있을 때는 진작에 공부 안 하다가 나중에 꼭 겪어봐야 하는 게 우리들이라며 짜증을 냈다. 그러니 나보고 미리 공부해 놓으라고 으름장을 두셨다. 오빠도 감기가 심하지만 결근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엄마도 관절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지만 일을 하러 가셔야 한다. 동생은 중2병을 앓으며 갑자기 활발하던 아이가 침울해졌다.
나는 이제 막 다시 세상이 밝아질 것 같은데 또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그냥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행복뒤에는 슬픔이 따른다지만 어떻게 그 주기가 이렇게 짧을 수 있는지. 나의 행복은 그 뒤에 올 슬픔을 위해 발라둔 연고와도 같은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나 자신과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살기로 했다.
별 수 없으니 말이다. 내가 어떤 배경, 환경에서 태어나는 것은 통제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 열심히 살아가는 가족과 타인을 보며 나 또한 그저 내 '삶'을 살아가기로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까 세상도 좋고 밝게 바뀌겠지. 어둠 뒤에는 빛이 따르니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멋진 곳이다. 잠시 위기를 겪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반짝이는 곳, 이에 힘쓰기 위해 나는 잠시 더 넓은 세계를 항해할 준비를 한다. 답을 찾아 돌아올 수 없어도 결국 다시 돌아올 것이다.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걸 알아버렸고, 작은 배려와 행복도 존재하는 곳이라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시야를 넓히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좁혀서 작은 것들을, 숲이 아닌 나무를 바라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그러면 긍정적인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은 세상 말고, 내 삶에 집중해보려 한다. 물론 내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도울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내 마음이, 내가 중심이 된 내 삶에서 우러나와야 진실된 것이니까, 나 자신부터 아끼고 돌본 후의 일이다. 내가 사는 세상도 나처럼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아질 거라고 믿었더니 성장해 버린 나처럼 세상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아니, 그렇게 믿어야만 한다. 생각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흘러간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 멈추지 말고 뚜벅뚜벅 다시 내 길을 닦아가며 천천히 걸어보려 한다.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그리고 평온한 나 자신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