붙여줄 것을 찾아 나서려 한다
엄마는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알게도 모르게 부모님의 등골을 쪽쪽 빨아먹고 있다고, 그래서 등골이 휘다 못해 접힌 것 같다고.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향해 문을 닫는다. 하지만 여느 때처럼 나를 응원해 주는 아빠가 준 기프티콘으로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마시며 '채식 주의자'를 읽고 있던 때에,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다. 엄마를 찾다가 전화를 안 받으셔서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아빠는 갈비뼈 7,8,9번이 부러져 있는 상태로 한 달간 일을 하셨다. 우리는 아빠한테 제발 CT를 찍어보라고 했지만 아빠는 싫다고 그냥 감기라고 치부하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닌가 의심도 해보았지만 결국 갈비뼈가 나간 거라니. 가족들의 수많은 걱정과 의문 속에서 답이 나왔다. 나는 이때 느꼈다. 부러진 세 개의 갈비뼈, 그 하나하나가 나, 오빠, 동생은 아닌지. 우리가 부러뜨린 건 아닌지 생각하자 마음이 아려왔다.
실로 이번 연도에는 죄책감이 지대했다. 대학 1년을 날려버리면서 부모님의 수고도 날려버린 셈이니. 나를 데리러 왔을 때 봤던 아빠의 초췌한 안색은 잊히지 않는다. 그런데 아빠는 오늘 갈비뼈가 부러진 사실을 알고도 일을 하러 간다고 하신다. 물론 사회의 이치는 알고 있다. 알바조차도 아프다고 쉽게 결근을 할 수 없는 게 사회다. 그래도 갈비뼈 골절은 심한 수준이라고 생각되는데 왜 병가를 내지 못하는 것일까. 난 이제 더 이상 내가 정한 것에 대해 멈추지 않기로 했다. 그 결정엔 내 노력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도움이 언제나 함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자퇴를 한 걸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마음이 아프다. 동기들과 선배들, 심지어 교수님들조차 그립고, 소속감이 없는 뿐더러 부모님을 볼 면목도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천천히 피는 꽃처럼 쉬어가자고 단 번에 날 데리러 왔고, 엄마의 마음도 천천히 설득했다. 나와 비슷한 성격이기에 나를 이해한다는 아빠가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빈 말이라도 꼭 나중에 제일 효도하겠다고 했다.
자신은 없었지만 꼭 자립해서 더 나은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감기라고 생각했을 때, 쉽게 일어나지 못하는 걸 보고 누워있지만 말고 도와달라고 말한 게 너무 죄송스러웠다. 복대를 차는 이유도 몰랐고 왜 그렇게 CT를 찍으러 가는 걸 꺼렸는지도 몰랐다. 아빠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이 감기에 걸린 게 아니라 뼈에 금이 갔다는 걸, 그걸 우리가 알게 되면 걱정할 거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난 이제 스스로를 책임지고 싶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냥 힘든 데로 버틸 작정이다. 더 이상 멈추고 싶지 않다. 일시정지 버튼을 계속 누르는 인생은 이제 지겹다. 가끔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부모님께 너무 미안하다. 미안해서 미칠 것 같다. 자책으로 이어지지 않게 감사함을 가지고 싶은데 감사함은 자꾸만 죄책감으로 변질된다. 어째서 조금씩 나아질 때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는지... 그게 인생이란 건지 잘 모르겠다. 그저 아빠의 갈비뼈 하나하나가 다시 붙기를 바랄 뿐이다. 붙여줄 것을 찾아 나서려 한다. 그게 나 스스로 먼저 잘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것일지 잘 몰라도. 어떻게든 아빠를 누르는 압박감과 무게를 덜 수 있는 것이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