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문
여러 뮤지컬을 봤지만 '위키드'는 보지 못했다. 항상 학교 음악실에 붙어 있는 포스터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영화가 개봉한다기에 설렘 반 호기심 반으로 보러 갔다.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보다가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임을 알았고, 어렸을 적 책에서 읽었을 땐 엑스트라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던 북쪽 마녀의 배경에 놀라고 말았다. 작품에는 여러 가지 사회문제도 담겨 있었다. 인종차별, 사회 체계의 구조적 문제, 그리고 학교 폭력 문제 등이다. 나는 그 문제를 작중에서 하나하나 짚어주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나올 듯했다. 또한 대학의 이야기이다 보니 내 인생과 연관 지어 버렸는지 좀 슬펐다. 또한 시국이 시국인 만큼 잘못된 사회에 당당히 아니라고 외치는 엘파바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또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잘못된 선으로 인해 악역을 자처하는 선량한 사람의 비애가 담긴 여러 다른 작품들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이는 꽤 클리셰적인 부분이 있는 듯 하지만, 가히 충격적이었다. 원하던 모든 것을 팽개치고 자신이 옳다는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안다. 다른 이들에게 공격을 받을 것도 알고 앞으로의 길이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인 것을 예상했을 엘파바가 이와 맞서 싸우겠다고 한 순간, 그녀의 자아의 정체성이 새롭게 정립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가끔 자신들과 다르고 틀리면 악이라고 간주하고 괴롭힌다. 당하는 사람의 대상에는 힘든 일을 겪은 사람, 차별을 받는 사람,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등 왜 이렇게 공격을 받을까 하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러면 사회에 문제가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생각해 볼 만도 하지만 사람이 바쁘다 보면 자신의 삶만 바라보고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리를 내는 사람도 많기 때문에 사회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오즈는 결과적으로 안정된 것처럼 보이지만 아주 위태롭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사유가 자유롭지 못하고, 특정한 관념과 환상에 사로잡혀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를 무너뜨리면 혼란이 올 것이다. 그걸 무서워하는 소수의 지배층이 이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데 이에 반해 현실을 바라보고 자신의 길을 가는 북쪽 마녀 엘파바는 눈엣가시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혼란이 있을 지에도 불구하고 나서는 많은 엘파바들이 세상에 존재한다. 요즘에는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되어 있기에 다행이다. 작중 세상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누군가 희생이 꼭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거리도 잘 던져 준 것 같다.
혼란스러운 시국일수록 누가 진짜 적이고 아군인지 잘 모르게 된다. 그걸 특정화시키는 집단의 사유에 따라가게 되면 부회뇌동하는 사태가 일어나 참사가 벌어지는 것이다. 현실을 바라보고 스스로 사유하는 게 습관화되지 않고 그저 사회분위기에 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과 역사를 왜곡하고 잊으려 하는 사람들은 평생을 선의 범주에 들지 못하지만 스스로 바르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힘들다고 현실에 안주하고 그저 그런대로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주위를 둘러봤을 때 세상이 너무 낯설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다. 나서야 할 땐 나서야 하고, 자신이 그 소수가 되거나 파장이 두려워 숨기만 하면 정말 변하는 건 없다. 다수가 수적으로 유리한 건 맞으나 개개인 하나하나 모두 자신만의 힘이 있기 때문에, 세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른 길로 가기도 한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시국, 어떤 집중과 선택, 어떤 것을 선과 악으로 판명할 것인가. 당연한 선을 선이라 부르지 못하고 당하기만 한다면 스스로 물음을 던져야 한다. 지금 나는 제대로 된 세상에 살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자신의 소신, 혹은 대의를 위해 공동체의 룰을 던져버리고 악역을 자처한 여러 작품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결국 다수와 다르면 공격을 받게 되는 걸까. 그런 현실이 잘못된 거지만 당하는 대상들은 대부분 힘든 일을 겪어온 사람, 사회적 소수자들, 그리고 선한 사람들이다. 그 도구가 되어 버리는 것들은 본디 기준과 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언론, 소셜미디어 등, 세상에 진실을 알리고 스스로의 사유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 등 본질이 존재했다. 아직도 존재하지만 변질되고 있는 약간의 틈을 우린 놓쳐서는 안 된다. 아닌 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보고 두려움에 직면해 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시대에 따라 그런 행위는 폭력에 의해 진압되기도 하고 무시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많은 사람들이 소리 낼 수 있게 되었고, 세상은 점점 발전하고 있다. 사회 분위기에 따라 선과 악이 좌지우지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 노력해야 한다. 두려워서 그걸 포기하면 부화뇌동하여 자신이 향하는 길에 대한 의문도 없이 특정한 수단에 휘둘리는 인간이 된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엘파바와 같이 사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