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포기 안 해
프로필을 작성하고 내가 개시한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나름 브랜딩도 했고 홍보도 했다고 생각했다. 유일무이한 과외 선생님이 될 마음은 준비되었는데, 관련하여 유튜브 채널도 파고 블로그도 파고 밴드도 파고 인스타에도 내 의지를 내보였지만 세상은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다는 듯 내게 퇴짜를 던지는 과외와 알바들... 엄마는 그것 보라며 알바조차 쉽게 구해지는 게 아닌데 내가 무슨 수로 과외를 구할 거냐며 고개를 저으셨다. 엄마 말이 맞을 순 있다. 하지만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근데 나 아직 포기 안 했는데, 돈 좀 모이면 과외 홍보비로 써버리지 뭐." 엄마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코웃음을 쳤다. 결국 또 공장에 가서 알바를 하게 됐지만 그리 씁쓸하진 않았다. 현실은 분명 씁쓸한데 한 학기 동안 좌절도 깨달은 것도 너무 많이 급작스럽게 겪게 되어 마음이 단단해진 게 분명하다. 나의 1학기는 참 애매했다. 행복하기도 좌절스럽기도 했다. 시도와 도전을 마구 하는 학기이기도 했지만 실패와 거절을 마구 당하기도 한 학기였다. 난 아직 포기한 게 아니다. 그저 잠시 현실과 장단을 맞춰주는 것을 뿐.
부모님에 대한 감사도 느끼고 관계에 대한 소중함도 간직한 지금, 나 좋자고 원하는 것만 찾고 있을 순 없다. 일단은 돈을 벌기로 했다. 좌절을 할 때 나의 안 좋은 습관은 폭식과 과소비다. 내가 원하는 것, 심리적 보상을 받기 위해 그저 그 당시 감정에 이끌려하는 소비라는 걸 알아도 꼭 내게 필요한 소비라고 마지막에는 합리화를 하고 만다. 몸살, 장염, 이명, 영양 불균형이 겹쳐서 쓰러질 뻔도 했다. 그만큼 절박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기말고사여서 중간 때의 아쉬운 부분을 메꾸고 싶었지만 그만 몸살로 기절하듯 자다가 다음 날 시험 두 개를 못 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 두 과목은 신경을 제일 덜 쓴 과목이었기에 결과에 따라 재수강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재수강이란 딱지를 내 성적에 붙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진정한 배움을 위해 할 수 있는 거라면 기꺼이 하기로 했다. 차라리 잘됐다. 아무런 애착 없이 대충 공부를 한 것으로 시험을 쳤다면 스스로도 만족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험 기간 동안 울면서 공부를 했다. 다들 열심히 하는 환경에서 나는 내 노력이 그저 평균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 학교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럼 더 위에 있는 학교는 얼마나 공부를 하는 걸까... 그 차이 때문에 내가 과외 시장에서 밀리는 걸까... 노력의 기본값이 밀린다는 걸 학교 이름으로 증명하게 되어서? 그런 생각은 나에게 하등 필요가 없기에 없애기로 했다. 잠시 시간을 두고 천천히 해보기로 했다. 바로 뭔가를 시작하지 말라는 경고 같았다. 돈이 필요하다고 조급하게 새로운 걸 시작했다간 발이 꼬일지도 모른다. 일단 돈을 좀 모아서 자본을 가지고 다시 시작해야겠다. 계획의 수정이 필요한 시기다. 마음은 저 멀리 앞서 뛰어가고 있다. 열정은 준비되었다. 하지만 이번 기말고사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은 체력은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대학생은 어쩌면 팔방미인이 되어야 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성격도 좀 긍정적으로, 체력도 강철로, 대인관계도 이리저리 부딪혀보며, 도전을 두려워하면 안 된다고. 우리 나이대에 10개 시도하면 8개 실패하는 게 당연한 거고 그중 한 개라도 성공하면 잘하는 거라고 하셨다. 부담스러운 위로란 이런 것일까. 내게 부족한 게 뭔지 나는 분명 알고 있다. 우선은 체력이고, 두 번째는 항상 긍정적인 태도 혹은 성격이다. 태초에 우울한 기질을 타고 태어난 나는 시험기간에 너무 미친 나머지 마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강해지고 독해져서 뭐든 해내는 무너지지 않는 초인적인 힘을 원했다. 그래서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나는 마녀라고 이 정도에 무너지지 않는다고. 병원에서 수액을 맞고 일어나서는 죽집에 가서 죽을 한 그릇 싹싹 비우고는 다시 학교에 가서는 하루에 커피를 몇 병씩 마시며 다 토해내는 짓을 반복하며 등신소리를 들었다. 그랬을 지도. 하지만 나는 내가 5년째 복용하고 있는 약이 나를 항상 졸리게 하고 그 느낌이 싫었기에, 정확히는 무기력해지는 기분이 싫었기에 차라리 매일 24시간 깨어있는 것을 택했다. 불면증과 어지러움이 따라왔지만 나는 괴로워도 행복해도 깨어있었다. 좀비처럼 말이다. 그리고 잠이 안 와서 뒤척이다가 새벽이 되면 자동으로 커피를 들고 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목에는 달 모양 목걸리와 검은색 상의와 하의를 입고 마치 내가 뭐든 해낼 수 있는 마녀라도 된 듯이 가서 공부했다. 결국 역효과가 났지만 그렇게 절박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자취를 하면서 숨만 쉬어도 돈이라는 걸 깨달은 이상 나는 돈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교내 장학금, 국제화 장학금을 따고 싶어 무리했다. 시험기간 도중 토익 시험을 치러 갔고, 시험공부를 위해서 스터디를 여러 번 열고 그 와중에 팀플까지 하며 영어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하고, 진로를 위해 유튜브 크리에이터 활동까지 했다.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쌓고 싶어서였다.
다 끝나고 하루 동안은 생각했다. '지금 내게 남은 건 무엇이지. 체력, 결과, 돈 그 무엇도 얻지 못했네.' 그 좌절 속에 머무르면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아 시험이 끝나는 대로 본가로 향했다. 본가로 갔다고 해서 마음이 더 나아진 것은 아니었고 오히려 홀로 서지 못해 외로웠지만, 온전한 여유가 돌아오자 그저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만난 선배들, 동기들 전부 완벽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저마다의 고충이 있었고 나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 사는 동생들도 있었다. 그걸 보고는 나는 오히려 힘을 얻었다. 그리고 같이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 주변 사람들을 더 챙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로 마음의 힘을 얻었다. 나도 힘들지만 타인을 챙기면서 내 마음이 더 따뜻해지고 누그러지는 걸 발견한 것이다. 돈만 된다면 봉사계열 직종을 얻었으리라. 하지만 애초에 그런 마음가짐으로는 이 직종에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그저 내 꿈을 따라갈 뿐이다. 과외를 포기하진 않았다. 다만 내가 더 우수한 사람이 되면, 더 단단해지고 나만의 확실한 어드벤티지, 메리트를 키울 수 있을 때, 다시 시작하면 된다. 그러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