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이유 백만 가지, 절박해져야 하는 이유 무한 가지
힘들다, 힘들다 소리도 버릇이 된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이유를 찾고 있노라면 끝이 없다. 직접 해보면서 알게 된 결과다. 반면에 해야 하는 이유를 찾으라면 생각보다 적어 스스로에게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그냥 과정 중에 만들어나가기로 했다. 내가 '절박해져야 하는 이유'를 말이다. 나는 그 동기부여 중 하나에 '동생'을 넣기로 했다. 이용이라면 이용이지만 부모님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부모님은 나와 우리 오빠가 동생을 어느 정도 책임져주기를 바라신다. 사실, 오빠와 내가 부모님한테서 교육적 지원을 많이 받느라고 동생은 맘대로 공부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21살, 내가 너무 쓸모없게 느껴져 또다시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느꼈다. 희미한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할머니도 다 우는데, 동생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동생은 나중에 병원 발코니로 나를 데려가서 담담하게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얘기를 듣고는 전날 시험공부한 게 하나도 생각이 안 나고 머리가 백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손도 덜덜 떨리면서 그 자리에서 울었다고 했다. 그날 시험은 망쳤는데 시험 망친 건 아무 상관이 없더랬다. 동생이 울자 그때서야 나는 내 마음이 속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울증 치료 5년 차가 다 되어가는 지금이다. 나는 과연 절박할 이유가 없을까. 내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작년 혹은 고등학생 때처럼 똑같은 이유로 무너지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부족하다. 그래서 내 동기에 동생이 추가되었다. 좋은 언니가 되고 싶다.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학과 교수님들은 우리들을 진정으로 걱정하시며 제발 복수전공이나 다른 대외활동도 적극적으로 하라고 하셨다. 취업문이 낮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도 여느 문과 쪽 학생들처럼 복수전공 때문에 고민이 생겼다. 단일 전공만 챙기기에도 벌써 벅찬데 다른 학과 수업을 챙기는 게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보다 나에게 얼마나 필요한지를 따져보려고 한다. 일단 국제문화교류전문가가 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메리트가 되는 건 맞지만 나는 이미 하고 있는 게 다양하다. 학교 인재개발원에서 하는 진로 점프업, 빌드업 프로그램도 참여해서 대외활동을 챙기고 있고, 블로그, SNS, 유튜브 등으로 나만의 포트폴리오도 만들어 나가고 있다. 그래서 자유롭게 내가 하고 싶은 걸 주워 담는 쪽을 택하고 싶다. 한 마디로 '문과 = 복수전공이 생존' 공식을 깨뜨리고 싶다는 것이다. 뭐라도 하고 있으면 복수전공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무지성 선택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내가 필요하면 하는 것이고 필요 없는데 할 게 없어서 택하는 것만큼 독이 되는 건 없다고 본다. 학생회장 선배가 밥을 사줘서 우연히 얘기할 기회가 생겼다. 선배가 나는 뭘 해도 될 사람 같다고 해줬다. 생전 처음으로 남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난 주변에서 여태까지 중도 포기자로 낙인찍혔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 말을 들으니 마음 한 편이 편안해졌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선배에게 보답하고 싶어졌다.
가끔씩 전 남자 친구도 생각난다. 외모와 성품을 떠나서 그 오빠는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그 숨 막히는 열정이 부러워서 나도 모르게 존경 같은 감정이 생겼는데 그걸 좋아하는 마음이라 착각했다. 그저 나는 내가 동경할 대상을 연애상대로 착각한 것이었다. 그런 시행착오를 겪고 난 후, 나는 점점 중심을 잡기 시작했다. 하기 싫은 이유가 수백 가지라면 내가 절박할 이유,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를 무한가지 만들기로 했다. 그냥 하는 사람들을 존경하지만 나는 일단 동기가 필요하다. 그런 유형의 사람이다. 그래서 오늘은 땡볕에도 일하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죄책감이 아닌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잠이 오지 않았다. 고시원에서 더 이상 울지도 않게 되었다. 그곳은 더 이상 작고 창문 없는 방이 아니라 내 큰 꿈을 담아두는 작은 상자가 되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담아 한 학기가 다 가버리기 전 톡을 보내기로 했다. 학생 회장 선배, 학과 보살 선배(후배 담당 선배), 그리고 부모님, 동생까지 다 한 마디씩 보낼 말들을 정리했다. 동생은 고등학생이 되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냐고 부모님께 물어봤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동생에게 공부나 하라고 보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하라고. 어떻게든 미래에 도와주겠다고. 아직은 능력 없는 언니에 불과하지만 절박함으로 내가 이루어낼 미래의 끝에는 책임감 있는 딸, 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 친오빠는 독한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학자금 대출을 1년 만에 다 갚고 자격증도 많이 땄다. 그리고 몇 번 아팠다. 하지만 툴툴 털고 일어나서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리고 내게 건강, 미래 등에 관해 잔소리를 늘어놓는 부모 3번이다. 오빠가 든든해서 내가 고마움을 느끼는 것처럼 나도 동생에게 든든한 언니가 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난 절박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힘듦이 아무것도 아닌 듯이 그냥 흘러가듯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