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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가 깨닫게 해주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소중한 것들

by 몽도리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면서 먹는 것, 입는 것, 필요한 모든 것이 돈임을 체감했다. 아빠 카드를 쓰는 게 매번 미안해서 시키지도 않은 전화를 걸어 허락을 구했다. 쌍방이 미안해지는 치사한 돈이었다. 아빠는 아빠대로, 나는 나대로, 서로에게 미안해서 투박한 말투가 나갔다. 하지만 그 말투에는 다정함도 들어있었다. 계속 밤을 새우다 보니 잔병치레를 하게 되었다. 아플 땐 부모님이 떠올랐지만 예전과는 달랐다. 그저 힘들다고만 어리광 부리는 아이에서 역지사지를 해보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 엄마는 학교 조리실에서 매일같이 일하며 더운 날은 더운 대로, 추운 날은 추운 대로 한 번도 아프다고 일터에 나가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 와중에 자신에게 더 맞는 곳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자격증 공부도 틈틈이 하며 일명 주경야독을 해냈다. 아빠는 몇 십 년간 같은 직장에서 버티며 온갖 부조리한 일에도 꺾이지 않고 꾸준하게 직장을 다녔다. 때로는 몸이 성하지 않았고 갈비뼈도 부러졌지만 여전히 일하러 나갔다.

아빠의 갈비뼈는 다시 붙었지만 그렇다고 우리 집의 경제상황이 더 나아지진 않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 삼 남매는 죄책감을 가지게 되었다. 엄마는 없는 형편에 빚을 내서 우리에게 온갖 교육을 시켜주려 애썼다.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엄마가 무너지는 모습도 보았고, 체념하는 모습도 보았다. 훗날 대학을 가고 직장도 가게 된 오빠가 그때서야 후회를 하는 걸 엄마가 옆에서 또 위로해 주는 모습도 보았고, 매년 더 독해지는 오빠의 눈물도 보았다. 동생은 위의 언니 오빠에게 들어간 교육비로 인해 더 이상 자신에게 돌아갈 몫이 없었고, 엄마는 나와 오빠에게 미래의 동생 뒷바라지를 약속받았다. 지금은 내 코가 석자지만 꼭 책임지고 싶은 부분이기에 나는 취업이 절실해졌다. 22살, 대학교 1학년, 나는 지금 삶의 매우 중요한 시기에 다다랐다. 위로는 오빠가 현실에 부딪히는 걸 직접 보았고, 밑으로는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동생이 보인다. 그리고, 아플 때는 부모님의 잔상이 보인다.

아파도 매일 직장에 가야만 하는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내 부모가 말이다. 그리고 대학에 와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동기, 선배, 언니, 오빠, 동생들, 각각 다 다르게 살았고, 각각 다 고충이 있었다. 다들 힘들면서도 다들 행복한 일들이 하나씩 마음속에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 처지가 마냥 나쁘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어딘가 기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일보다는 공부에 집중하며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달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하는 순간이었고, 나는 내가 가진 것들이 눈에는 안 보이지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했다. 너무 아파서 엄마의 잔소리가 그리워졌고, 집에 언제 오냐고 보채는 아빠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나를 걱정해 주는 오빠와 동생, 그리고 내 안식처가 되어준 본가까지 전부 나에게는 자산이었다. 이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이미 내게 주어진 것이었다. 당연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았다. 힘들다는 생각도 덜해졌다. 해야 할 게 넘쳐났지만 그게 나중에 가서는 행복이 될 것만 같았다. 작년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 무기력보단 바쁜 게 훨씬 나았다. 그렇기에 다시 나아갈 힘을 얻었다. 그리고 힘들면 힘든 대로 그냥 지나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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