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희망

모든 걸 가질 순 없을지도...

by 칼미아

토익 성적이 드디어 900을 넘어갔다. 925점, 딱 국제화 장학금 1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점수보다 딱 5점 높은 점수, 분명 기뻐야 하는데 나는 기뻐할 수가 없었다. 조건 : 직전 학기 3.0 이상. 간당 간당 했다. 그동안 토익 외에 크리에이터 활동, 블로거, 작가 활동, 그리고 여러 다른 것들에 도전하느라 학업에 온전히 신경을 쏟을 수 없었다. 사실 변명이라면 할 말이 없다. 3.0, 애매한 과목들이 너무 많았다. 가령 중간고사는 잘 쳤는데 기말을 망쳤다든지, 기말고사 자체를 몸살로 인해 못 쳤다든지, 교수님께 메일을 쓰던지 연구실로 찾아가서 시험을 다시 치게 해달라고 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차피 공부를 제대로 안 한 과목을 다시 쳐봤자 무슨 차이가 있을까. 전공과목은 성심성의껏 해놓고 교양은 망친 기분이었다.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나는 다시는 같은 과목을 수강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 하는 주의였는데, 변수가 너무 많이 생겼고, 체력관리를 못하고 말았다. 허구한 날 토하고 병원에 가서 약 받고 수액 맞고 하다가 시간이 다 가버렸다. 엄마는 그런 나를 두고 결국 이건 등신 짓이라고 했다. 글쎄... 내가 또 허튼짓을 한 것일까.

학교에 오기 전, 1년 동안 너무 무기력하게 지내다가 학교에 가니 신난 망아지 마냥 나는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도 학업도 버리기 싫어서 몸을 혹사시켰다. 커피를 마시며 눈을 뜨고 커피를 마시며 잠에 들지 못했다. 새벽에 좀비처럼 커피를 또 찾는 지독한 카페인 중독이었다. 이제야 카페인이 몸에 해로울 수도 있다는 걸 자각하고 줄이기 시작했다. C이하가 나오는 과목은 재수강을 하고, 내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을지는 성적이 나와봐야 알 수 있는데 우리 학교는 아직 성적을 공개하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돈에 집착하게 된 것은 과거 공장에서 일하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결국 또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 공장 텃세를 맛보고는 과외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고 다른 알바들은 경력이 없다고 다 퇴짜를 맞고 또다시 공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최근에 삼립에서 생을 마감한 나보다 딱 한 살 많은 언니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엄마가 항상 겁주려고 자꾸 그러다가 나중에 평생 공장에서 썩을 수 있다고 우리에게 피딱지가 나게 소리쳤던 게 기억이 났다. 그 말투는 마치, 눈물을 멈추지 않으면 호랑이가 와서 잡아간다는 말투였다.

하지만 나는 그때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왜 엄마 아빠는 공장에서 일하는 걸 스탠다드로 잡는지. 그건 내가 공장에 나가보고 나서 바로 실감이 났다. 우리 아빠는 가드레일을 만드는 공장에서 부장이었다. 하지만 현장직이라서 매일 위험한 일을 해야 했고, 아빠도 그 분야에서 30년을 일해도 아직도 무섭다고 했다. 공장에서 다칠까 봐 무섭지만 가야 하니까 가는 거라고 했다. 나도 알바를 할 때 가야 해서 갔다. 그러면서 공부를 좀 열심히 해서 장학금을 타면 뭐든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과외를 하면 적어도 위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같은 말도 안 되는 합리화를 해댔다. 아직도 어렸던 탓이다. 공장에서 일하면 시급은 세서 좋다. 사고만 없으면 같은 일만 반복하면 되기 때문에 편하다. 하지만 무섭다. 다칠까 봐 무섭고 지칠까 봐 무섭다. 이렇게 겁이 많은 내 탓이라 계속 생각했다. 하지만 매번 내 불안을 없애려고 할 때마다 내 마음에는 피멍이 들었다. 내가 공부를 더 열심히 안 한 탓에 여기 있는 것만 같고, 어렸을 때 부모님이 뒷바라지해줄 때 최선을 다하지 못해서 힘들게 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다 내 편견이고 아집이라면 그걸 깰 무언가가 필요했다. 억울하진 않았다. 그저 나 자신이 싫어질 뿐이었다. 그럼 다른 알바를 찾아서 하면 되지 않느냐고 다들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서조차 경력을 봤다. 그래서 다 퇴짜를 받았다. 결국 내 경력은 공장 알바였고 다시 공장으로 향하게 되었다. 결국 이 두려움의 산물은 내가 다 만들어 낸 것일까. 다 내 탓일까. 이런 생각들 자체가 조심히 잘 해내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 될까. 나는 그들이 참 성실하고 누구보다 강인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가질 수 없는 단단함을 가진 것만 같다. 다가가면 그 단단함에 다칠 것만 같다. 공부할 때는 열심히 한다고 울기도 하고 치질도 걸려보고, 온갖 잔병치레를 하다가 이제 다시 일하러 가면 또 몸이 안 좋아질까 봐 걱정된다. 긴장이 높고 예민한 나는 긴장을 하면 온갖 병이 생겨난다. 그걸 참고 대부분 일을 해내지만 아프다고 표현하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은 별나다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면박을 준다. 그래서 티를 안 내려고 한다. 이제는 부모님에게도. 다들 그렇게 견디며 사니까. 그냥 힘들어도 힘든 데로, 버거워도 버거운 대로 있는 그래로 겪으며 흘러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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