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극복 에세이
어제는 정말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리고 있었다. 입시 설명회를 여느때처럼 학교에서 듣는데 마음에 드는 대학이 생겼고, 작년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꿈과 진로가 겹쳐 신나게 얘기를 했고, 현재 같은 반 친구와 수다도 많이 떨었다. 학교 선생님께 질문을 많이 해서 덤으로 문법 숙제를 공짜로 받았다. 다 좋았는데 집에 가서
대학에 대한 고민이 더 깊어지고 말았다. 오빠는 내가 정보력이 딸린다고 했고, 원서는 가, 나, 다 군 이렇게 겹치면 안되고, 학과가 비슷하면 겹쳐서 또 떨어질 수 있고, 논술은 교수님이 보고 휙휙 던지시다가 좋은 글을 찾으면 선택하신다고 하고,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들은 내년에 사라지거나 학과가 사라지거나 길거리에 대학생을 앉히는 학교라고 했다. 산 경험자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던 나는 침울해졌다. 마지막으로 오빠는 결정타를 날렸다. "그러니까 1학년때부터 열심히 계획을 잘 세워서 다 생각하면서 살아야지." 나는 오빠를 한 대 패고 싶을때가 많다. 그렇게 많은 입시 설명회를 듣고, 모집요강을 정독하면서 전형을 확인하고 정리하고 계속 찾아서 써낸 나의 노력들은 깡그리 무시한 채, 오빠는 나를 마마걸로 만들어버렸다.
솔직히 머릿속이 어지럽다. 오빠는 자신의 과가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고 했다. 그리고 현재 자신의 친구또한 과가 사라져서 다른 과로 전향하거나 학교를 옮겨야 하는 처지라고 했다. 나는 억울하겠다고 했다. 왜 그런거냐고 물으니까 오빠가 말했다. "공부 못하는 것들은 그냥 받아들이라는 거지, 자기네들 사정 아니니까." 오빠의 말은 살짝 자조적인 어감이 섞여 있었다. 오빠가 어느날부터 엄청 부정적으로 사회에 찌들었다는 느낌을 받은 때가 있었는데 그 동안 오빠는 뭘 얼마나 겪었던 것일까. 오빠는 그럴때마다 가끔 혼자 화장실에서 문을 잠구고 운 적이 있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이렇게 덤덤하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인격의 소유자일까. 나는 지금 울고 싶었다. 할 게 너무 많은데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한 것 같다. 하지만 내 마음이 아팠던 그때를 나는 절대 탓하지 않는다. 그건 어쩔 수 없던 게 맞으니까. 나는 그 당시의 내 상태를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래도 사는 게 좋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외롭고 조금 고독하고 내 자신을 미워했지만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거듭 반복하다가 그 사이클 때문에 지치기도 하고, 가족이랑 싸우고, 혼자서 방황하고 매일 밤 침대를 한강으로 만들어버린 날들....
나는 아직...더 울고, 힘들어해야 할 것들이 많이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한동안 힘들었다고 해서 그 다음은 무지개빛 삶일 거라고 생각하면 안되는 거였다. 더 혹독한 겨울을 맞이할 수도 있고, 그 전에 힘들었던 경험은 다음 시련을 위한 단련이라고 생각했어야 했다. 나는 오빠와 내 동생, 엄마의 인생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깨달았다. 가면 갈수록 더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되는구나. 되게 뭔가 슬픈데 바뀌는 건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건 적응하고 최대한 긍정적인 마인드로 돌을 깨부시는 것 밖에 없구나. 감정에 휩싸여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구나. 눈물은 아무 의미가 없다. 주변 엄마 아빠의 친구 분들의 자녀님들은 공무원 준비를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내려오고를 반복하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기도 하고, 공부하다가 자격증 준비로 바빠서 다른 걸 그만두고 하나에 몰입하는 분도 계시고, 여러 이야기들을 들으며 나는 새삼 다른 사람들도 다 힘들게 사는구나. 그렇다면 나만 엄청 걱정하고 있을 필요는 없겠다는 걸 느꼈다.
내 나이는 고작19살, 대학에 대한 고민도 많고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이 시기에 진로는 꼭 정해져야만 하고, 과도 정해져야만 한다. 엄마랑 오빠는 말한다. 일반고에서 10등 밑으로의 애들에게는 생기부에 진로가 바뀌어도 계속 괜찮다고 선생님들이 그러는 건 어차피 아무데나 보낼거기 때문에 그냥 신경쓰지 않는 거라고, 나한테 제발 세상 물정을 좀 알라고 했다. 그런 거였구나. 내가 봤던 미소들과 격려들은 그저 형식적인 것이었던 걸까. 나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내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를 믿어줄 사람은 내 자신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오빠는 내가 성인이 되는 걸 아주 걱정한다. 사실 오빠, 나도 엄청 걱정돼, 그래서 힘들어하고, 살고 싶지 않았던 때도 있었어. 어느정도 내 미래가 그려졌거든. 인간관계도, 학업도 그 무엇도 쉽게 해결되지 않는 나에게, 뭐 하나 그냥 넘어가지 않는 별난 나라서. 나중에 가서 그렇게 될 바엔 미리 끝내는 게 좋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오빠, 연명이는 절대 죽지 못하겠더라. 삶에 미련이 남았나봐.
살아보고 싶어서 다시 일어나면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 차게 되있고, 지치는게 계속되고, 기대하다 또 다시 절망해. 그러다가 깨달았어.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게 아니라, 뭐든 잘 해내고 싶어서 다 술술 풀리길 바라는 사람이라는 걸. 오빠가 그랬지. 아무것도 하기 싫으면 죽어야 한다고. 근데 죽지 못하는 걸 보니까 나는 다 잘하고 싶었나봐. 누가 어떻게 봐도 나는 다시 일어나기 위해 뭐든 했어. 그게 작아보일지라도 나에게는 큰 움직임이었고, 점점 커져야 다른 사람들 눈에는 티끌만큼이라도 보이겠지만, 내 자신이 알아주니까 상관없어. 나중에 돌아보면 나는 지금 이 시기를 애증으로 바라볼 것 같아. 내가 정말 원하는 건 저 멀리 하늘에 떠있는 별 하나 저 정도로만 반짝이고 싶어.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보지는 못하는 작은 별의 빛.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자신을 밝히고 웃고 있는 별처럼. 나도 내 신념대로 가보고 싶어. 더 이상의 망설임과 우유부단은 없어. 오빠, 오빠가 하는 모든 말이 맞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맞는 말도 많지만 틀린 말도 많은 걸 알아. 오빠는 항상 맞는 말만 하는 사람이라서 들을 때마다 내 속을 섬뜩하게 만들때가 있어.
그런데 모든 사람의 인생이 다르듯 나랑 오빠도 완전 다른 사람이니까 오빠 말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어. 충분히 도와줘서 고마워. 그리고 계속 연명이를 지켜봐줬으면 좋겠어. 이번에 내려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올땐, 나는 분명 다른 모습으로 당당하게 있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