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을 가지게 된 연명이
오늘은 엄마의 생신이자, 학교에 작가 초청 강의가 있는 날이다. 나는 항상 학교에서 열리는 작가 초청 강의를 맨 먼저 신청하러 가는 사람이었다. 학생증은 분실한지 꽤 되어서 시립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처지지만. 작가 초청 강의에 참석하면 좋은 점은 책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강의가 끝나면 내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간 느낌이다. 오늘 난 '식탁 위의 세계사'의 저자를 만났다. 그녀에게 작가가 되는 방법에 대해서도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개인적으로, 또는 다 모여서도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작가 초청 강의에서 이렇게 많이 질문을 한 적은 처음이었다. 왜 그런지 생각을 해보니, 그것은 확신의 유무 차이었다.
내 꿈이 확실하게 작가로 정해지기 전까지 나는 적극적으로 물어보지 않았었다. 작가는 항상 타고나고 머리 좋은 사람들, 대학 잘 나온 사람들만 성공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항상 깨닫고 나면 그렇게 생각하고, 주저했던 내가 부끄러워진다. 나는 왜 몰랐을까. 내가 내 꿈에 대한 상당한 애정이 있었는데도, 일부러 외면했던 것 같다. 중학생 때도 시립 도서관에서 있었던 작가 초청 강의를 엄마와 들으러 갔었다. 나는 가서 현실을 듣고서 못하겠다고 엄마한테 말했고, 그 결과, 실기를 포기하고 비실기로만 승부를 걸고 문창과를 지원하게 되었다. 오늘 오신 작가님 또한 어떤 과를 가더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고 하셨다. 확실히 그 점 또한 내가 작가가 되고 싶어하는 이유인 것 같다. 다양한 경험, 다양한 공부, 내가 만들어진 정도로 내 이야기를 내가 하고 싶은 얘기들을 풀어나갈 수 있다.
어디에서 종사하든, 무슨 일을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던, 각각의 삶은 모두 하나의 플롯이고, 스토리고, 남에게는 없는 소중한 보물이다. 그래서 내게는 가장 가치있는 글의 종류 중 하나가 에세이다. 하지만 미래에 작가로 등단하고 나면 나는 더 많은 종류의 작품을 내고 싶다. 문학은 물론, 비문학 요소가 들어가있는 작품도 도전하고 싶고, 무엇보다 영어덜트 소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 이번에도 마찬가지고 작가 초청강의를 듣다보면 내가 작가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님들의 유년시절과 공통분모가 분명히 있고, 준비하고자 마음을 먹었을때 하는 행동도 닮은 점이 많았기 때문이다. 언어를 어렸을때 배워두길 잘 한 것 같다. 역시 언어가 사람의 시야를 넓혀준다고 생각한 게 틀리지 않았다.
항상 작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한 구석에 있었지만, 그때마다 부업으로 미래에 하면 돼, 나는 타고나지 않았는 걸.. 이런 식으로 왜 생각했을까.
책 읽는 걸 엄청 좋아하기 보다는 책을 읽을 때 가슴이 벅차오르는 듯한 깨달음을 얻을 때가 많다. 그러면서 항상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쓰지 않으면 절대 읽은 느낌이 나지 않아 무조건 독후감을 쓰는 버릇을 들여온 나는 이제 더 큰 꿈을 꾸게 되었다. 작가가 되면, 사람들을 울리고 싶다. 가끔 눈물이 메말라버려 가슴에 구멍을 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폭우같은 시원한 눈물을 선물해주고 싶다. 그리고 그 후에 그 사람들의 가슴에 무지개 하나가 뜨게 만들고 싶은 게 내 소원이다. 참 내겐 많은 일이 있었다. 고작 19년을 살았지만, 내 삶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인<햄릿>에 나오는 햄릿처럼 고뇌를 많이 한 것 같다. 내적갈등은 햄릿 못지 않게 많았던 것 같다. 그 처럼 우울증도 앓았었고, 마음속의 천사와 악마가 많이도 싸웠다. 작품에서 결과적으로 신사답게 죽은 그의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햄릿에게 받아들일 운명이 그것이라면 나에게는 그것이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닐까. 너무 잘하고 싶어서 중간에 멈춰서더라도, 가만히 앉아있진 않을 걸 알기에, 이제는 우울함의 근원을 없애버렸기에, 그럴려고 무던히도 노력했기에 나는 이제 내 자신에게 내 꿈을 향해 나아갈 자격을 부여하고자 한다. 연명아, 수고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