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화된 호기심
부모님의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채, 심화는 얼떨결에 독립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 바깥세상에서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게 생소했고, 시간이 얼마 지난 후에 자신도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심화는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게 MBTI로 일을 배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MBTI 검사를 해야했다. 심화는 부모님의 서재에서 다량의 심리학 책을 읽었었고, MBTI 검사지를 받아들고 몹시 못마땅해했다. "순 엉터리야, 어떻게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사람을 뽑은 거지?" 결국 심화는 정말 이해 안되는 검사지를 억지로 풀어 대충 결과를 내어 자신이 ENTP라고 대답했다. 심화가 들어가려고 한 회사는 MBTI 검사지를 만들고 연구하는 연구소였다. 심화는 자신의 부모님을 보고 놀라하는 인간들에게 말했다. "저기...제가 대학이란 곳을 아직 안 갔거든요. 그런데 제가 심리학에 대해선 왠만큼 잘 알아요. 일단 대학을 다녀오고 나중에 여기 다시 와도 될까요?"
연구소장은 심화에게 자리를 지켜두겠다고 약속하고 4년 뒤 꼭 자기의 연구소로 돌아오라고 했다. 다행히 고등학교 졸업장이 있었던 심화는 다른 인간들처럼 대학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물론 MBTI는 계속 ENTP라고 둘러댔다. 심화는 대학에서도 MBTI에 맞춰 과가 정해졌고, ENTP동기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도 집에서 갇혀 살았던 탓에 심화는 대화에 잘 끼어들지 못했다. 대신 호기심이 강해서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다녔다. 대학 동기들은 심화의 MBTI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야, 쟤 ENTP아닌 것 같지 않아? 우리랑 좀 다른 것 같아." 그러자 다른 학생이 말한다. "야, 그럼 얘 여기 있으면 안되잖아." 그렇게 복도에서 학생들이 수군거리고 있는데 왠 남학생이 걸어가며 말했다. "모든 ENTP가 똑같이 행동하진 않잖아. 너네 바보야? E중에서도 외향적인 정도가 천차만별이고,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야."
학생들은 그 남학생을 보며 수군거렸다. "사색현 쟤는 맨날 다른 사람 말에 딴지 걸기 좋아하고, 진짜...우리 과에 누구랑 붙여놓으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심화는 색현에게 관심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과는 다르게 자신과는 비슷하게 색현도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의문이 많은 것 같았다. 심화가 색현에게 다가갔다. "있잖아, 난 심화라고 해. 넌 사색현이지?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왠지 너 밖에 없을 것 같아서." 색현이 뒤돌아보며 말했다. "무슨 얘기?" 심화가 말했다. "이 세상은 너무 이상해. MBTI가 정확한 것도 아니면서 그걸로 사람들을 자꾸 나눠. 솔직히 일도 학과도 자신의 성격에 굳이 맞춰야 할 필요가 있나? 자기가 원하면 어느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을텐데."
색현은 그런 말을 하는 심화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너는 그렇게 생각하구나. 물론 니 말이 틀린 건 아니야. 하지만 사람들은 갈등을 없애기 위해서는 이렇게 성격으로 나누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심화가 말했다. "갈등? 갈등이 꼭 없어야 해? 갈등이 좋은 것일 수도 있잖아." 색현이 말했다. "너 갈등이 뭔지나 알고 말하는 거야? 도대체 대학은 어떻게 들어온 거야? 서로 싸우고 멀어지게 만드는 게 갈등이야. 의견이 달라서 이렇게 부딪히는 것도 갈등이고." 심화가 말했다. "방금 너와 내가 한 얘기를 나는 갈등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의견이 다를 뿐이고, 그게 성격차이 때문이든 아니든, 너로 인해서 난 깨달은 사실들이 있어.
갈등이 정확히 뭔지 알게 되었고, 니가 무슨 의견을 가졌는지 알게 되었어. 꼭 나쁜 거라고는 할 수 없지 않아?" 색현은 심화를 바라보았다. "너는 어디가서 꼭 말 조심해. 아니면 네게 안 좋은 일들이 생길꺼야."
심화는 의아해하며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