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이의 에세이
8/12
어제는 정말 죽고 싶었다. 논술 준비하기 전에 최저부터 더 신경 써야 했는데 나는 2합 5나 2합 4를 맞출 수 있을까. 논술을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은 경북대와 부경대를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빠가 실망할 거라고 예상했는데 맞았다. 아빠는 화를 냈다. 이번엔 오히려 엄마가 위로를 해주셨다. 엄마 아빠는 내가 그다음 날에 정말 아파서 학교에서 울고 있었는 상황이었는데 조퇴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내가 언제 안 아픈 날이 있었냐면서 조퇴를 막았다. 그래서 끝까지 학교에 남아 있었다. 며칠째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죽을 맛이었다. 다 놓고 싶었다. 내 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가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 아빠가 요즘 예민한 건 재산 소송 때문에 그런 거구나. 우리 큰 아버지는 교사다. 아들을 부산외대에 돈을 주고 넣어주었다. 뭐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돈을 도박에 탕진하시더니 우리 아빠와 작은 아버지께 한 푼도 쥐어주고 싶어 하지 않으셔서 할머니를 거의 납치하고 우리와 연락을 못하게 하시더니 거의 짐짝처럼 대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는 협박을 받으시는지 장남 사랑을 버리지 못하시고 아빠와 고모를 나무라셨다. 이런 생각도 했다. 큰아버지를 한 대 치고 싶다고.
내가 외고에 다녔을 때 아빠는 돈이 없으셔서 돈을 거의 다 가진 큰 아버지께 무릎까지 꿇어가며 돈을 달라고 애원했지만 친구에게 빌려줄 돈은 있으면서 동생에게는 줄 돈이 없는 큰 아버지였다. 그 일 때문에 나는 외고를 나왔을 때 죽을 거라고 각오를 했었다. 아빠가 그렇게 까지 모욕적인 일을 당했는데 나는 결국 나왔으니까. 근데 죽는 건 쉽지 않았다. 옥상은 무서웠고, 자해는 깊지 않았으며 목도 쉽게 졸리지 않았다. 결국 살기를 택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극복하고를 반복하는 인생을 살고 있다. 할아버지가 조금만 일찍 장남에게 속았다는 걸 아셨으면, 그리고 속지 않으셨으면 집을 자신도 모르게 넘기시지 않으셨으면 우리 아빠에게도 몫이 있었을까. 그리고 우리 집도 그들 집과 같이 좀 살만해지지 않았을까. 내 탓을 하기가 질리고 눈물을 흘리기가 신물이 나서 이제는 내 분노가 어른들에게 향한 것 같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잘못 없으시다.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일주일 뒤에 내 꿈에 나오셨다. 나를 마중 나오셔서 갑자기 나를 안아주시고 떠나셨다.
그다음 날에 비가 내렸다. 신기했었다. 나는 힘들 때마다 할아버지께 데려가 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정말 지상을 완전히 떠나신 것 같다. 모든 일이 엉망이 되었다. 이제 다 어떻게 되든 그냥 시간과 흐름에 인생을 맡기고 싶다. 가장 더러운 기분은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이다. 괜히 기대했다가 나중에 다시 무너지고를 반복하면서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지는 걸 느낀다. 내가 고작 19살이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을 보면 이 나이가 이런 좌절들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나이었다. 인생의 가혹함을 맛보고 사회에 나갈 면역력을 키우는 시기. 자조적인 상태의 나는 어제 배게를 눈물로 적시고 나 자신을 다시 탓하면서 자해를 했다. 어느 인문학 책에서 말했다. 성찰은 자기 학대로 끝나면 안 되고 연민으로 끝나야 한다고. 하지만 때로는 나는 나 자신이 저기 앞에 뛰어가는 고양이보다도 하찮게 느껴진다.
나는 몇십 년을 더 살아가겠지만 마지막에 묘목이 되고 싶다. 내 유골을 나무 밑에 묻어서 내가 나무가 되어서 사람들을 그저 지켜만 보고 싶다. 그러면서 더 이상 자책이라는 지옥에 빠지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어른이 되어도 자책하는 건 계속될 것이고 이렇게 우는 일도 우울증도 충분히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 끝에는 너무 지쳐서 쓰러지지 않을까 싶지만 아직은 아니다. 연기가 되어서 사라지고 싶다. 연명이 와 작별을 하고 크로이 티스( 내 우울증 이름)와 안 싸우기로 했는데 다시 연명이 가 되고 크로이 티스는 내 곁을 떠나지 않는다. 햄릿의 대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진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