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이의 어른되기 준비
엄마가 곧 사촌 이모께 연락을 취해주신다고 한다. 내가 호주에 있는 이모네 식당에 알바생으로 일하게 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엄마께 나는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을 하고 어학연수 겸 호주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해야 할 것이 많이 생겼다. 우선 얼마 남지 않은 수능을 마무리 짓고, 면허를 따고, 그걸 또 국제 면허로 바꾸기 위한 연습을 하고, 영어회화 연습을 하고, 단단한 멘탈을 만들어야 한다. 오빠는 인종차별을 걱정하며 못 가겠다고 했다. 나는 이 좋은 기회를 날리고 싶지 않았다. 인종차별에 관한 글을 마침 쓰고 싶었기 때문에 겪고 오겠다고 다짐했던 나이기에 나는 또 한번 깨진 멘탈의 유리 파편들을 쓸어모아 용광로에 넣어 단단한 것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한동안 무기력하고 우울해지면서 내 삶은 왜 아픔과 극복의 반복인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고민할 시간도 없게 되었다.
한동안 글쓰기 말고 다른 것에 집중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글쓰기 없는 연명이는 팥 빠진 찐빵이었고, 이로써 나는 내게 있어서 글쓰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계속 하기로 결심했다. 날짜나 요일을 정해서라도 계속하기로 했다. 항상 힘든 일이 생기면 이건 다 나중을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은 척 하려 한다. 하지만 막상 감정적으로 한계다 싶을때면 그런 마음은 안중도 없고 그냥 좀비가 된다. 여기서 세상은 우리에게 물어본다. 그대로 더 어둠속으로 가라앉을 것인지 다시 일어나서 빛을 향해 걸어갈 것인지. 빛을 향해 가려고 선택한 사람들에게는 계속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게 만드는 시련을 주고, 그냥 가라앉으려는 사람들은 숨을 조이는 어둠속으로 넣어버린다.
이번에도 또 내 우울증인 크로이티스가 찾아올 뻔했다. 나는 딱 그가 오기 전 한 발 앞서서 막았다. 다행이었다. 새삼 또 우울해지면서 느꼈다. 세상은 내가 우울하건 행복하건 똑같이 돌아가는 구나. 마치 CD 플레이어의 일시정지 버튼 처럼 나만 일시정지를 당했는데 주위는 그냥 계속 PLAY인 것 처럼 그렇게 지나가는 시간을 더디다고 느끼면서 발을 떼면서 나는 또 이렇게 내 자신에게 배신 당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포기는 인간이 자신에게 주는 가장 큰 상처다. 그러면 그 자신은 후회로 다시 그 상처를 돌려준다. 내 안의 자아와 전쟁을 시작하는 것이다. 얼마 안 남았다고 포기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닌 어중간한 사람이었기에 고민할 수 밖에 없고 발을 헛디딜 수 밖에 없었다.
주변에서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지금 고3이 취할 행동은 아니니까. 그냥 달려가기도 바쁜데 스텝이 꼬여서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학교에서는 애써 담담한 척 했다. 하지만 팔에 흐르는 피는 내 마음이 정반대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 자신에게 다시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가치를 잘 안다. 내 가치는 글쓰기, 영어 말하기, 계속 해서 도전하고 다칠 준비가 되있는 이상한 도전정신, 새로운 관점을 좋아하는 사색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싶어하는 발굴가, 실전파 등이다. 그 외에 내가 찾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다. 하지만 그게 점수가 적힌 종이 한 장으로 정의되는 것에 분개해도, 나는 뭐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이미 이를 위해 준비해와서 동조자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또한 내가 분개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다 없다. 나만 힘든 것도 아니고 주변에 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기에 내 행동은 사회에서 맞지 않는 행동이다.
하지만 나중에 호주에 가서 직접 돈을 벌고,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이모의 말벗이 되어주고, 그 와중에도 그 경험을 계속해서 기록하고 적는 내 미래의 모습이 보인다. 포커 페이스, 우울증 극복 등을 해내고 면허도 따낸 내 자신을 머릿속에 그리며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이번 방황은 이렇게
1주일로 끝내기로 하자.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이렇게 점차 방황하는 시간을 줄이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보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지. 이렇게 연명이는 생각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