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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긍정 오뚜기 Oct 04. 2022

도움에 자격 따위 논하지 말자

모르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그리고 도울 수 있는 사람으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작가가 꿈이기 이전에는 상담사가 꿈이었고, 그 전에는 국제 무역가, 그 전에는 또 뭐였는지 생각도 안 난다. 하지만 단 하나는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었다. 물론 주위에서 듣는 말은 "네 앞가림이나 잘해. 너 자신이나 도와." 이런 말들 뿐이었지만. 아직도 그러지만 고양이를 너무 기르고 싶었을 때 오빠가 말했다. 나 자신이나 잘 키우라고, 내 앞가림이나 잘할지 모르는 판국에 누가 누굴 키우냐고. 그냥 말만 했는데 한 다섯 마디가 돌아왔다. 한창 우울했을 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래, 내가 지금 이 모양인데, 내가 아직 정상이 아닌데 누가 누굴 도와.'  하지만 나중에 그 인식이 바뀌었다. 

아직 치유가 다 안 된 상태여도 충분히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다. 힘들어하던 나에게 중요한 얘기를 해주시면서 도움이 되어준 외할머니랑, 이모할머니, 그리고... 상담사 선생님들.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건 3학년 초였다. 그때 나는 한창 학교 상담 선생님, 담임 선생님, 그리고 전문시설에서의 청소년 동반자 상담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점점 나아질수록 이 직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 상담 선생님께 선생님처럼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생님은 반대하셨다. 선생님은 상담사를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내 미래를 걱정하셨다.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으면 또 내가 무너질까 봐 걱정이 되신 것이다. 그리고 선생님은 어른이 되어서도 신체화 현상을 겪고 있으셨다. 상담사로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아서 항상 4교시가 되기 전에 병원을 가고 안 계셨다. 나중에 이쪽 계열의 직업들이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 자살률도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시작하려고 했고, 그러다가 결국 나를 치료해버렸다. 


     그리고 틈틈이 더 쉽게 우울증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들을 공유하기 시작했고,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도왔고, 그러면서 또다시 우울해지는 경험도 했다. 처음에는 도움이 된다는 기분에 행복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사연들을 읽으면 읽을수록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는지, 내가 마치 그 심정을 느끼는 것처럼 하루 종일 우울하고 눈물이 났다. 그리고 나와 거의 비슷한 삶을 산 듯한 중학생의 사연도 보게 되었다. 도움을 주고 싶을 때 가장 답답한 부분은 처음부터 나아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은 불가능한데 힘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당장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며 조급해하며 발버둥 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이해하는 도움을 주는 이는 안타까워도 기다리고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상담 선생님은 내 기질을 테스트를 통해 알고 계셨다. 그녀는 알고 계셨다. 내 기질에 정말 맞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객관적인 도움보다 감정이입이 앞서면 도움이 역효과가 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전문적으로 돕는 것보다 자발적으로 틈틈이 힘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상처의 크기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느낌상으로 나보다 더 큰 아픔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가능하다. 그 자격여부를 따질 필요 없이 원하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말. "아무것도 모르면서..."  맞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 인생 처음 사니까, 처음 봤으니까. 하지만 알아가는 걸 시도할 수 있다. 일단 인간으로서 살면서 슬픈 일이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이야기를 하면 서로 사실을 같이 나눠가지게 된다. 그럼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또 생긴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나중에는 충분히 아는 사람, 그 후에는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단계별로 천천히.... 이것만 알면, 조금도 효율적으로 도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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