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소원
아빠는 내가 자신을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도대체 내가 아빠를 왜 원망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조금 알고 있었을지도. 아빠 판박이인 나는 항상 내 성격을 싫어했다. 내 기질을 너무 혐오해서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자살시도도 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아빠가 무너지는 걸 본 순간, 다시는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내 성격과 기질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각각의 성격은 다를 뿐이지 잘못된 것은 없다는 당연한 생각을 박아두고 내 성격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착하다는 말, 어찌 보면 순진하고 호구 같다는 말, 좋게 돌려서 말하면 인내심이 깊다는 말. 내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된 데에는 내 인간관계에서 그걸 느꼈기 때문이다. 타인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원치 않게 알게 된 순간, 착하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느리고 결정을 빨리하지 못하는 것도 책임지기 싫어한다는 것도 신중하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했다.
엄마는 아빠나 나나 책임을 지기 싫어서 결정하지 않는 거라고 말했다.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유형이라고. 근데 엄마는 아빠와 왜 결혼했을까. 의문이다. 책임이라는 말, 너무 어렵게 느껴진다. 엄마가 예시를 들었다. “공부 때려치우기로 선택했으면 남은 삶을 밑바닥을 기는 것에 대해서 후회하거나 짜증 내지 않고 받아들이면 되고, 하기로 선택했으면 네가 하기로 한 것들에 대한 노력, 시간, 돈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거야.” 내가 물었다. “어떻게?” 엄마가 말했다. “나중에 성공한 삶을 살면 돼. 그러면서 원하면 빚진 사람들에게 조금씩 갚으면 되는 거고. 예를 들어 부모. 제일 등신 같은 게 선택을 못하고 중간처럼 사는 거야. 몸 버리고, 정신 버리고, 시간 버리고, 상등신이 따로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아무래도 내가 그 상등신인 것 같아. 근데 뭐, 될 대로 되라지. 나도 몰라.’
나중에 엄마가 말한 그 상등신이 됐다고 생각해서 슬픈 마음에 친구를 찾아갔을 때 친구가 말했다. “아니, 그 길이 우리한테 맞는 길인지, 언제 멈춰야 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아. 겪어봐야 다 아는 거지. 네 잘못 아니야.” 애초에 처음부터 손 뗄 수 있었으면 하지 않았겠지. 돈도 쓰지 않고 그냥 행복하게 지낼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불안감에, 그래도 이렇게 버티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 나름 내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그저 중간짜리 밖에 안된다는 말과 평가를 들었을 때 그저 무너지고 가라앉고 세상이 멸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죄책감으로 둘러싸여 나 자신밖에 탓할 수 없는 것을 또 느끼며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내 정신 상태가 점점 금이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망한 김에 진짜 밑바닥까지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난 절대 담배나 술을 택하는 그런 쪽의 길을 걸어가지 않았다. 오빠가 그런 길로 빠지려다 정신을 차렸을 때 병실에 누워있던 것이 떠올랐다. 오빠는 간접흡연 피해자다. 우리 오빠가 어쩌다 그런 친구들을 뒀을까. 그리고 폐 수술을 받고, 탈모가 오고, 절망을 하고 중요한 시기를 다 놓쳐서 힘겨워하는 걸 보았다. 결국 다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임을 보았기에 나는 그저 내 속만 썩이고 있었다. 공부가 아니다 싶으면 중도에 포기하고 더 이상 불필요한 돈을 쓰지 않게 했어야 했다는 부모님의 말에 나는 차마 내가 될 놈이었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른 걸 하기엔 자신이 없었기에 실기 준비를 하는 시기도 놓쳤고, 이제는 선택이란 단어를 혐오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