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이 느껴질 때
두 번째 상담 선생님과의 상담기간이 어제로 끝났다. 12번의 만남이 완성된 것이다. 이전에 첫 번째 선생님과의 이별은 어땠는지를 떠올려보았다. 그때 나는 당당한 표정으로 선생님께 나는 이제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낼 수 있는 멘탈을 가지게 되었다고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헤어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다시 나와 재계약을 하면 상담을 해주실 수 있었지만 요즘 방침에 따라 그게 힘들게 되었다. 선생님이 그래도 기관에 연락을 취해서 지속적으로 상담을 이어서 할 수 있도록 알아봐 주신다고 하셨다. 솔직히 선생님과 상담을 더 이상 못하는 상태에서 내가 너무 힘들어지면, 수능을 치기 한 달하고 2주 정도 가량 남은 시점에서 내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를까 봐 무섭다. 예를 들어 자해를 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선생님께 나보다 더 절박하게 도움이 필요한 친구들 곁으로 가달라고 부탁했다.
이제부터라도 스스로 해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상담 선생님과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내게 있어 인간관계는 항상 이런 식이다. 끝나면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진다. 사실, 내가 다시 연락하기를 꺼린다. 연락을 하게 되면 과거로 다시 돌아간 듯한 느낌과 그리움이 밀려오기 때문이다. 상담 선생님들 또한 그런 존재로 남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선생님들은 내게 있어서 항우울제와 같은 존재를 넘어서 지지대 역할을 잠시나마 하고 가신 분들이었다. 나는 그분들 아니면 내 얘기를 할 수 없다. 하라고 하면 주변인들에게 내가 힘들다고 말을 하겠으나, 내가 그냥 말을 할 수가 없다. 내 힘듦을 털어놓고 싶은 사람이 없다. 지금 있는 친구들은 하나같이 다 수능을 준비하는 친구들이고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는 이런 얘기를 하면 그냥 같이 죽자고 한다. 그래서 내가 더 말리는 쪽이다. 그 친구도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내가 한때 도움을 준 친구는 내가 힘들다고 연락을 했을 때,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난감해했다. 엄마랑 오빠는 성향이 달라서 그냥 나한테 잔소리나 말만 안 걸면 다행이다.
요즘에는 계속 수능과 관련된 악몽을 꾼다. 나는 평소에 내가 수능 스트레스가 아예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남들보다 힘들게 뭐가 있나 싶어 밝게 다닌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꿈에 나오는 무의식은 그게 아니라고 자꾸 외친다. 꿈에서 나는 친구가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하소연한다. 고3이어서 작가가 되기 위한 실기 입시 준비는 늦었다고, 그러면 그러지 않을 친구가 자신이 상위 대학에 간다는 얘기로 염장질을 지른다. 일어나서 보니, 모순 덩어리임을 알았다. 운전은 지금 수능 공부를 안 하고 운전면허 준비하는 친구들을 가리키고, 꿈에 나온 친구는 미술 입시를 준비하는 실기 100% 전형으로 가는 친구였고, 그 친구가 말한 대학들은 내가 학교에 있을 때 주변에서 자꾸 들려오는 이름들이었다. 모순인 건, 친구가 차를 운전 할리가 없지 않은가. 이건 내 무의식이 만들어낸 개꿈이다.
그날 밤, 내가 힘들다는 걸 부모님께 그래도 조금이라도 털어놓을까 싶어 자지 않고 있었더니 엄마가 왜 요즘 열심히 안 하냐고 상담 끝난 거랑 수능 준비랑 무슨 상관이냐고 말하셔서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엄마 다시는 나한테 말 걸지 마." 죄책감은 들지 않는다. 성향이 달라서 이런 말이 자주 오고 가는 게 우리 모녀니까. 엄마는 저번에 다시는 서로 얼굴 보고 살지 말자는 말도 했었다. 오늘 아침, 차에서 아빠한테 다 털어놨다. 아빠에게 주변 사람이 있어도 외로운 심정을 아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평소처럼 "그래서 어쩌라고." 이렇게 짜증을 낼 줄 알았는데 아빠는 자신도 그렇다고 얘기를 했다. 털어놓을 사람이 있어도 자신이 털어놓고 싶은 사람은 없다고, 그래서 속으로 쌓아두는 나쁜 버릇, 자신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아빠는 그래도 나는 글 쓰는 재주라도 있어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있는데 자신은 없으니까 자신이 더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아빠한테 쌓아두는 게 위험한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오늘 아침에는 비가 대차게 내렸다.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하늘이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나는 당연하고 팩트인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엄마랑 오빠는 그게 내게 도움이 되는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도움이 되는 말과 팩트는 다른 개념이다. 이미 알 텐데, 그런 식으로는 내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그러면서도 연락할 데가 없어 오빠한테 카톡으로 하소연하는 내가 지질했다. 오빠는 답장을 하지 않는다. 내게 그냥 대나무 숲 같은 역할만 해주면 된다. 훌쩍 어른이 되어버린 오빠는 내 감정을 다 무시한다. 마치 자신에게는 이런 시기가 없었다는 듯이.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내가 커서 오빠처럼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 여동생의 것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