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 구 카스티야 지방의 중심지 팔렌시아 북쪽의 도시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가는 통과점
프로미스타까지의 여정은 산길, 작은 도시, 그리고 벌판, 끝으로 운하를 경험하는 다양한 파노라마를 볼 수 있는 코스였습니다
중간에 도착한 작은 도시에서 (아래 사진) 식료품들을 구할 수 있어서 그곳에서 점심거리를 구매해서 , 부지런히 걸었습니다.
이곳에서 처음에 만났던 독일인 친구를 만나게 되었는데, 다리를 다쳐서 다시 돌아간다면서 저희에게 잘 다녀오라고 악수를 했습니다
도시는 차량들은 몇 대 있으니. 시람들은 살고 있었지만, 아침 10시인데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식료품 가게에 들어가니 70은 넘어 보이는 어르신들 몇 분이 빵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이 날의 코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처음에는 산길을 걷다가 바로 작은 오솔길이 나왔고,
. 나지막한 언덕이 나오는데, 저는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다른 일행들은 평지만 걷다가 산을 오르다 보니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 이후에 한참을 걷다가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과거 로마시대에 건물이 있는 걸 봐서는 요충지였다고 봅니다. 지금은 쇠락해 가는 마을이었고요. 식료품 가게가 1개 위치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순례길의 주요 코스가 되는 마을은 그래도 카페며, 식당이며 있지만, 그냥 스쳐 지나가는 코스들은 점점 마을이 사라져 간다고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 이후에는 넓은 평원이 펼쳐집니다. 스페인 순례길에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장면중 하나입니다. 바람이 많이 불기는 했지만, 그만큼 구름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하늘도 예뻐서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 그리고 운하를 만납니다. 잠깐 설명을 찾아보니, 200km가 넘는 엄청난 운하였습니다. 그 시작점이 프로미스타인 듯 싶었고요. 그래서, 이곳에는 철도도 지나가더군요. 도시는 작았지만, 알찬 동네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날 다른 일행들은 프로미스타가지 못 오고, 직전에서 휴식을 했는데, 시설이 좋지 못해서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 아래는 2021.2.14일 적었던 글
순례 14일 차. 온타나스에서 프로미스타까지
14일 차. 따로 또 같이 (프로미스타)
2월 13일 날씨 흐리다 맑음, 바람 많이 붐
“아무리 몸부림쳐도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 자정이 넘긴 길바닥에 앉아 / 소주를 마시며 너는 울었지 / 밑바닥까지 내려가면 다시 / 올라오는 길밖에 없을 거라는 그따위 상투적인 희망은 / 가짜라고 절망의 바닥 밑엔 더 깊은 바닥으로 가는 통로밖에 / 없다고 너는 고개를 가로저었지 / 무거워 더 이상 무거워 지탱할 수 없는 한 시대의 / 깃발과 그 깃발 아래 던졌던 청춘 때문에 / 너는 독하디 독한 말들로 내 등을 찌르고 있었지 / 내놓으라고 길을 내놓으라고 / 앞으로 나아갈 출구가 보이지 않는데 / 지금 나는 쫓기고 있다고 악을 썼지 /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이라는 /..(중략)... / 그래 정말 몇 편의 시 따위로 / 혁명도 사냥도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 아무것도 할 수 없던 한올의 실이 피륙이 되고 / 한 톨의 메마른 씨앗이 들판을 덮던 날의 확실성마저 / 다 던져 버릴 수 없어 나도 울었다 / 그래 네 말이 맞다 네 말대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 그래 네 말대로 길이 보이지 않는다 / 그래 네 말대로 무너진 것은 / 무너진 것이라고 말하기로 한다 / 그러나 난파의 소용돌이 속으로 그렇게 잠겨갈 수만은 없다 / 나는 가겠다 단 한 발짝이라도 반 발짝이라도”
- 길. 도종환
이제는 거의 순례길을 걸은 지도 반이 넘어가는 시점이다 보니, 다들 체력들도 한계에 부딪힌 듯 보였다. 특히나, 안 걷던 사람이 매일같이 20km 이상을 걷는ㅈ데, 몸이 고분고분 말을 들일 리 없다. 며칠 전부터 대학생 막내 친구도 따라오기는 하지만, 많이 지쳐 보였다.
일행들은 전날 저녁시간에 내일 갈 목적지를 정하는데. 대부분은 책을 보고 정하지만 그래도 km수가 크지 않은 면 조금 더 갈지도 정하는 게 순서였다. 하지만. 어제저녁에는 또 숙소가 불거져 나왔다. 책에 나와 있는 대로 갈 경우 숙소가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10km 정도 더 가서 숙소를 잡자는 의견과 힘든 상황에서 더 많이 가는 건 무리다라는 의견이 갈려서 결국 두 팀으로 나뉘어 걷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걷는 속도도 일단 빠르게 가서 많이 쉬자와 중간중간 적당히 쉬면서 천천히 걷자 (오늘 안에만 도착하자)도 나뉘어서, 오늘은 출발 때부터 명확하게 구분돼서 순례길을 시작하게 됐다.
사실 맞는 말이다. 원래부터 함께 다니려고 온건 아니었으니까. 기본적으로 혼자 열심히 이 길을 완주하겠다ㅈ는 목표로 왔는데. 우연히 만난 거구. 그래도 서로 잘 배 려 하면서 잘 왔던 건데.. 서서히 서로의 컨디션 (체력) 들이 차이 나면서 그동안 쌓였던 말들이 쏟아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보통 대학생팀들은 조금 천천히 가는 것으로 결정됐고, 나를 포함한 40대 중반 이상 팀들은 조금 더 걷는 것으로 해서 순례길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기 코스도 그렇게 힘들지 않은 상황이라. 쉬면서 가자는 팀이 목적한 장소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기어코 자존심 때문인지. 그 팀은 그곳ㅈ에서 머물기로 하고, 우리는 조금 더 큰 마을에 도착ㅈ해서 좋은 숙소를 잡았고 (우리 일행만 있었고, 인 테 리어 감각 이 있는 집주인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ㅈ라서 전체적인 분위기가 아주 훌륭한 곳이었다) 한번 해보고 싶었던 닭백숙 요리를 만들어서 맛난 저녁을 먹었다. (우리 팀 에는 요리에 재주가 있는 대학생 친구 가 한 명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윗사람들과 어울 리면 혜택이 많다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잠깐, 20대 후반의 이 친구와 얘기를 나눴는데. 목포 출신에 지방 국립대 문헌정보학과 재학 중이었다. 누나. 형 2남 1녀 중 막내로. 해병대 2사단 근무. 2017년에 제대했고. 2년간 각종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700만 원으로 유럽여행 중이었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거 끝나고 모로코 이집트 터키 여행을 간다고 했다. 현재 50일째인데 200여만 원 사용할 정도로 근검절약이 몸에 밴 친구였다. 특히나 ‘젊을 때 고생은 필요하다’는 철학이 마음이 들었던 친구로, 본인이 여행을 해보니 한국 사람들은 여행 와서 걱정하는 사람이 많은 게 흠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 불만 있는 사람 들은 여행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왜냐면 그런 부정 적인 생각을 들으면 주변의 사람들도 마음을 상하기 때문 이란다. 또 여행 중에. 집이 ‘은수저’인 사람을 만났는데, 어릴 때부터. 4 가족이 70일간 세계 여행을 하면서. 고급 호텔에 렌터카로 다녔는데. 대학에 와서 배낭여행 와보니 너무 불편해서 입에 불평불만을 달고 다녔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유럽에 30일 있는데 돈을 600만 원 소비하는 럭셔리 여행을 하더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본인은. 이런 사람 만나면 불편해다는 얘기와 함께. 소소한 TIP으로는 해외에서 소매치기 안당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데. 쌕 가방은 밖에 나갈 때 절대 안 가져 다니고 몸에 어야 하고, 무엇보다도 최대한 없어 보여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일부로 누추한 복장으로 다닌다고 했다 (그래서 이 얘기에 감동받아서 나는 수염도 안 자르고 최대한 없는 모습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끝으로, 여행꼰대 조심하라고 했다. 이들은. 자신이 (노력도 없이) 3루에 있으면서 3루타 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상대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적기 때문에. 이들을 만나면 무조건 36계 줄행랑을 치라고 조언을 해줬다. 아무래도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생각도 깊고, 무엇보다도 생활능력이 뛰어나서 많이 본받을게 많은 친구였다. (2021년 기록)
이렇게 언덕에 올라서 멋진 풍경을 보는 것은 처음 순례길 초입에 보았던 곳 말고는 두 번째가 아닌 듯싶다. 아마 농사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는 더 멋진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논농사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논밭에 비닐하우스도 심고, 건물도 올리고 해서 '평야'라고 일컫는 것이 줄어드는 상황인데, 이곳은 워낙 땅도 넓고 날씨도 좋다 보니 이렇게 끝없는 벌판에 농작물들을 심기보다는 뿌리는 게 아닌지..
이런 농업국가의 역사 때문인지, 아니면 뜨거운 날씨 덕분인지. 이곳의 사람들은 한없이 밝고, 맑고 순수하기만 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손을 흔들어주었고, 길을 잘못 가면 바른 길을 안내해 주었으며, 숙소를 못 찾고 헤맬 때면 같이 숙소를 찾아주던 기억이 내가 스페인 순례길을 통해 만난 스페인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지금 보는 풍경은 앞으로는 보기 힘들어지는데. 이유는 기후가 추워지기 시작하고 산악지대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레온까지가 비교적 평야지대였다면, 이후에 가는 코스는 산악지형에 속하므로, 지금 분위기와는 사뭇 다를 수밖에 없다. (작물도 달라져서, 산악지대는 포도를 많이 수확한다)
다만, 오래전에는 산악지방이 적으로부터 방어가 수월하기 때문에 산악지형을 중심으로 성이 만들어지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기거를 했으므로, 중세도시들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이 있지 않나 싶다.
그렇다면, 오래전에는 이곳은 밭이 아니라 숲이 아니었을까?
들짐승들과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 힘든 평야지대는 사람이 살기 위험하므로 이곳은 끝도 없는 숲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싶다.
같이 간 분이 사진을 잘 찍어줬으면 좋으련만, 나보다 나이가 2살 정도 많았지만, 일행들과 어울리는 것도 조심하셨고, 사진을 찍어주는 것을 별로 내켜하지 않으셨다.
물론, 사진 찍으러 온건 아니니까. 그래도 지나고 보니. 기록을 한건 많은데. 나를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이 적어서 살짝 아쉽기는 했다.
아무리 좋은 풍경이라도 풍경사진만 덩그러니 찍는 건 하남을 보다 보면 질리게 마련. 여기에 사람들이 몇몇 들어가 줘야 사진 볼 맛이 나는데..
프로미스타로 뻗은 카스티야 운하. 스페인의 북부 지방인 부르고스, 팔렌시아, 비야돌리드주 등을 가로질러 흐르는 이 운하의 길이는 207km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프로미스타에서 출발하는 유람선도 있었습니다.
프로미스타에 도착해서는 좋은 숙소를 얻어서 삼겹살을 구워서 먹었습니다. 중간 도착지로 선택하지 않는 곳이라서, 도시가 조용했으며, 시설들이 좋은 알베르게가 많아서 숙소 정하는 데는 수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