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른이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30대 미혼 공무원의 성장일기

by 쵠정

"사랑 참 어렵다"


제대하고 복학한 선배가 교양수업을 같이 듣자며 귀찮게 했다. 교양수업 과제를 대신 해주면 밥을 사주겠다나 뭐라나. 학교 앞에 헌혈차가 와서 헌혈을 하러 가면 같이 하자며 따라왔다. 헌혈 후 나눠주는 영화티켓으로 같이 영화를 보자며 막무가내로 졸랐다.


이 선배 왜 이래?


그렇게 첫 연애를 시작한 건 2011년 5월, 21살이었다.


"오빠, 이것 좀 도와줘."


2013년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대학통신원)으로 활동할 때의 일이다.


인터넷 신문사인 오마이뉴스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를 모토로 2013년 제1기 대학생 기자단을 선발했는데, 운 좋게 내가 뽑히게 된 것이다. 어릴 때부터 신문기사를 읽고 내 생각을 써오면서 한때 '기자'라는 꿈을 꿨었는데, 이번이 그 꿈을 경험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대학통신원은 캠퍼스 곳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자유롭게 기사로 작성한 후 오마이뉴스 편집부에 보내고, 편집부는 그 기사를 홈페이지에 노출시킬지 여부를 판단한다. 아이템이 독특하고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경우에는 메인화면에 걸리는 영광도 누리게 된다.


나는 나의 첫 기사 주제를 '영남대학교 박정희새마을대학원(이하 새마을대학원)에 대한 교내 학생들의 생각'으로 잡았다.


2011년 11월 개원한 새마을대학원은 한국의 성공적인 사회경제적 발전과 새마을운동의 경험을 널리 세계인과 공유함으로써, 한편으로는 인류공영에 이바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격향상에 기여하기 위해 설립됐다. 개발도상국 등 학생들은 1년 6개월 간 '새마을운동 이론 및 실천', '공공정책 및 리더십'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그 당시 새마을대학원은 '경제발전이라는 목적 하에 이루어진 독재정치 미화'라는 입장과 '우리나라가 과거 이룩한 경제 성장의 방법들을 개발도상국에 전달하는 좋은 기회'라는 입장으로 찬반논쟁이 있었는데, 재학생들의 생각은 어떨지 궁금했다.


주제 선정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학생들의 생각을 어떻게 알아보지?

나의 MBTI는 ISTJ. 낯가림이 심하고 내성적인 내가 설문조사를 어떻게 해...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SOS를 쳤다.


"우리 약식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자. 큰 보드판에 긍정, 부정, 무관심으로 표를 만들고 스티커를 붙여달라고 하자. 오빠가 같이 도와줄게."


남자친구와 간이 의견판을 만든 후, 중앙도서관 앞에 섰다. 무표정으로 담배피는 사람, 삼삼오오 모여 커피마시는 사람들, 이어폰을 끼고 음악 듣는 사람.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여자친구가 대학생 기자단인데, 이 설문조사가 꼭 필요하거든요! 바쁘시더라도 10초만 시간 내주세요."


남자친구가 먼저 나섰다. 귀찮다고 손사레 치는 사람들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고 움츠러들만도 한데 남자친구는 끈질기게 부탁했다.


"이야, 멋진 남자친구네요. 추운데 고생많습니다. 저는 여기에 붙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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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2시간 만에 100명의 의견을 모을 수 있었고, 11월 차가운 공기에도 남자친구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그 땀방울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이번 주제를 멋지게 기사화하기 위해 밤새 글을 썼고, 홈페이지 메인에 내 기사가 떡하니 걸렸다.


이렇게 남자친구는 항상 나의 '든든한 해결사'였다.


2014년부터 본격적인 취업준비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약해진 나에게 그는 '너는 무엇이는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며 응원해줬다. 서류탈락, 면접탈락의 고배를 마실 때도 '더 좋은 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며 나를 위로해줬다.


우리는 2015년 같은 해 취업에 성공했고, 남자친구는 부산으로 발령이 났다.


부산과 대구, 차로 1시간 30분, 기차로 1시간. 1년 정도 장거리 연애를 하며 변함없이 내 편이 되어준 남자친구를 보며 문득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빠, 우리 결혼할까?”

“오빠가 아직 모아놓은 돈이 없어. 조금만 더 일하고 결혼은 천천히 생각해보자.”


그 후 한참이 흐르도록 나는 내 프러포즈(?)에 대한 답을 듣지 못했다.

내 마음이 지친걸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2020년 12월 우리는 헤어졌고, 내 20대의 전부였던 9년 연애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별 후 한동안은 일에 치여 슬픔도 온전히 느끼지 못했는데, 3개월쯤 지났나, 헤어진 그로부터 문자가 왔다.


‘앞으로도 행복하길 바랄게.’


문자가 희미하게 보였다. 눈물이 툭 하고 떨어졌다.


든든한 버팀목 같았던 사람과의 이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탓에 이성에 대한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소개팅에서 만난 분들과의 인연 또한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봄날의 꽃잎처럼 나를 설레게 하고, 여름의 소나기처럼 나를 상쾌하게 해주는 사람, 가을의 차분함과 겨울의 순수함을 닮은 사람이 나에게 또 찾아올까. 사랑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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