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른이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30대 미혼 공무원의 성장일기

by 쵠정

"아직은 비혼주의자입니다"


요즘은 나 혼자 잘 살고, 결혼은 지옥이고, 통제불가능한 아이는 고통인 티비 프로그램이 유독 많이 보인다. 그런 프로그램 때문에 비혼주의를 결심한 건 아니지만,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뒷받침해주긴 하는 것 같다.


결혼이 의무가 아닌 선택사항이 되면서 왜 결혼하지 않냐는 무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 심지어 결혼을 장려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여기서 그 ‘이상한 사람’은 우리 부모님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겪어야 할 일련의 과정들이 있는데 왜 결혼을 생략하는지,

엄마아빠의 결혼생활이 좋아보이지 않기 때문에 니가 비혼주의를 선택한 건 아닌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친구들이 부럽지 않은지,

나중에 혼자 남겨졌을 때 외롭진 않을지 등


결혼하라는 이야기를 이성적으로 혼도 내고, 감성에 호소하기도 하면서 다양하게도 하신다.


내가 언제부터 비혼주의였는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9년 만난 남자친구와의 이별 후 충격과 취업 후 먹고싶은 것 입고싶은 것 하고싶은 것을 적당히 즐기는 일상생활의 편안함에 더해, 회사 옆자리 여자 선배들의 육아와 일 사이 고군분투를 직관했던 즈음인 것 같다.



일을 시작하고 1년이 채 되지 않았던 신입 시절, 내 옆에 앉아있던 13년차 선배는 12시 땡 하자마자 자리에서 부리나케 일어났다.


"점심 약속 있으세요?"

"나는 오늘 당직이고 신랑도 과회식이라서, 우리 애들 저녁 밥 좀 미리 해두고 올게!"

"네?"


듬직한 삼형제를 둔 40대 선배는 1분 1초가 아쉬운 듯이 자동차 시동을 걸고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선배의 집은 사무실에서 차로 10분 거리. 집이 조금만 멀었다면 아이들 밥하러 점심시간에 집으로 갈 엄두도 내지 못할텐데, 집과 사무실이 가까운 걸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점심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1시가 되자 헐레벌떡 집으로 갔던 선배가 돌아왔다.


"식사는 하셨어요?"

"밥 대신 카페라떼 한잔 테이크아웃했어. 다이어트도 하고 좋지 뭐. 그나저나 애들이 맨날 고기반찬 고기반찬하는데 오늘은 도토리묵무침으로 해놨어. 아마 저녁에 집에 가면 왜 고기반찬 아니냐고 떼쓰겠지만 도토리묵이 탱글하니 맛있겠더라니까."


다운로드.jpeg 2024년 10월, 경주 도리마을에서 먹은 도토리묵무침. 요즘도 나는 도토리묵무침을 볼때면 그 선배가 생각난다.


오전 내내 민원인 전화에 숨 돌릴 틈 없었는데 점심시간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엄마의 역할을 수행한 선배의 멋쩍은 미소가 짠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가 선택한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


오후 업무가 끝나갈 때쯤 나지막히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 낳고 키우는 내 동기들은 모두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손을 빌리더라. 그리고 그만큼 직장에 더 몰입할 수 있으니까 솔직히 지금 나보다 다 잘나가. 그렇다고 엄마로서 잘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오해하지마!"


점심시간을 이용해 아이들의 밥을 차리러 간 모습을 짠하게 바라본 내 눈빛을 눈치챈 것인지, 그 선배는 변명인 듯 아닌 듯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진지한 선배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내 몸이 선배 쪽으로 돌아갔다.


"근데 나는 결혼할 때부터 일도 육아도 스스로 해내고 싶었어. 누구의 손을 빌리기 전 혼자 한 번 해보자라고 다짐했거든. 내 시간을 쪼개서라도 일과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게 나중에 후회하지 않겠더라고."


단단한 힘이 느껴진 선배의 말에 나는 오히려 두렵고 겁이 났다. 본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나는 삼남매 중 둘째다. 언니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며 일찌감치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장녀 아닌 장녀 역할을 해왔다. 물론 대단한 일은 한 건 아니다. 부모님이 복숭아 적과할 때나 병원갈 때, 건강보험공단이나 근로복지공단 업무를 처리할 때 등 내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연차를 써서 함께 하는 정도? 해결하지 못할 과제들은 아니었으니 하나씩 미션을 완수할 때마다 '난 좋은 딸이야'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알게된 부모님의 건강이나 경제적인 고민에 대해서는 딸로서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그럴 때는 답답함과 함께 '난 무능한 딸이야' 라며 자책을 했다.


나에게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곧, 잘 해내는 것과 같다. 남들에게는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어찌됐든 박수받을 자격이 있다고 번지르르하게 말하지만 나 스스로에게는 굉장히 엄격하다. 잘해내지 못한다면 최선을 다한 게 아니다며 나를 채찍질한다. 그래서 나는 애초에 잘 해낼 수 없는 일이라면 섣불리 시작하지 않는 이상한 버릇도 가지고 있다. 결혼도 그 중 하나다.


딸이라는 역할 하나도 잘 못하는 내가, 누군가의 배우자, 엄마, 며느리로서는 잘해낼 수 있을까.

믿음직스러운 아내, 든든한 엄마 그리고 다정한 며느리가 될 준비가 되었는가. "NO"


준비되지 않은 부족한 모습을 들키까봐, 잘해내지 못할까봐, 그래서 최선도 다하지 않을까봐 비혼주의라는 포장지로 나를 감싸고 있는 걸수도 있겠다.



그 후로도 선배는 종종 소중한 점심시간을 할애해 아이들의 저녁밥을 만들러 집으로 갔다. 혼자보다는 함께 잘 살고, 결혼은 행복이고, 통제불가능한 아이도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선배처럼 되기엔 나는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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