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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모리 Oct 12. 2023

행복의 기준

인간의 역사가 빠르게 변화하면서 추구하는 가치 또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개인의 행복을 추구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자본주의 이전, 자본주의 이후, 제국주의 사상이 존재했던 17세기 후반~20세기 중반까지는 국가나 사상의 가치가 가장 높았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 몇몇 독재 국가를 제외하면 가장 중요한 가치는 개인이 되었다. 대한민국을 비롯한 몇몇 선진국들은 핵가족화되면서 개인의 행복을 더 우선시하기 시작했다. 어떤 전문가 집단은 핵가족을 넘어서 '핵개인'의 시대가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상 양극화는 점점 심해져 가고 있다. 개인의 행복은 상대적인 가치이지만 과거에 비해 상대적인 것이 훨씬 더 피부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개인의 행복이 상대적이지만 우리는 이 행복이 오로지 ‘개인’의 것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행복하다고 느끼고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오로지 개인의 가치이며 개인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이면서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절대적’이다 라는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개인의 행복은 절대 다른 사람이 100% 온전히 느낄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대신 해줄 수 없는 가치이며 다른 사람이 물질적으로든 또는 정신적으로든 행복이라는 것을 매개체를 통해 준다고 해서 주는 사람이 느끼는 가치와 받는 사람의 가치가 절대 같을 수 없다. 매개체뿐만 아니라 주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고 장소에 따라 다르고 시간에 따라 다르다. 또한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매개체의 경우 당시 기분에 따라 다르고 당시 상황이나 생활 환경에 따라 다르며 물가상승률이나 물질의 특성에 따라 금전적인 가치 또한 달라질 수 있다. 즉, 행복이라는 것은 명백하게 형태나 크기, 깊이에 따라 측정하거나 형용할 수 없고 개인만이 ‘절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기에 절대적이라고 언급하는 것이다. 여기서 ‘느끼다’라는 것은 만족감, 성취감, 뿌듯함, 웃음, 기쁨, 사랑스러움, 귀여움 등 감정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감정이 향하는 것들을 잘 인식하고 숙지할 필요가 있다. 감정들이 향하는 것, 감정들이 향하는 곳, 그리고 감정들이 향하는 누군가가 바로 행복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유동적’이다 라는 부분을 살펴보자. 행복은 시시각각으로 변해 유동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커지기도 하고 작아지기도 한다. 아파트를 예로 들어보자. 집값이 점점 올라가면 행복이 증가할 수 있지만 아파트는 시간이 지나면서 노후화될 수 있고 주변에 신축 아파트가 들어서면 상대적으로 부족해 보여 행복이 떨어질 수 있다. 즉, 물질적인 행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다. 물론 정신적인 행복도 유동적이다. 오늘 즐거운 하루를 보냈지만 내일 불행하게 느낄 수 있고 오늘 누군가의 생일 잔치지만 오늘 누군가의 장례식일 수도 있다. 시간에 따라 장소에 따라 행복은 유동적이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은 일과 휴식에서도 드러난다. 많은 사람은 퇴근 이후 휴식에서 행복을 찾는데,  어떤 사람은 사람을 만나면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하고 혼자 지내면서 행복감을 느끼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일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다. 사고방식이 다를 수 있지만, 퇴근 이후의 행복을 행복이 아닌 쾌락으로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경우, 자기자신이 시간을 가장 많이 쓰는 일이나 관계에서 행복해야 행복감이 높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어떠한 계획을 잡아놓고 그 계획을 실행하기 전, 계획을 상상하며 하는 설렘을 행복감이라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행복한 일을 많이 겪고 행복한 일을 스스로 많이 만들어내며 행복을 쌓아올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고통을 덜어내는 일도 중요하다. 사실 고통을 덜어내는 것이 더 쉬운 일이다. 불필요한 감정과 불행하게 만드는 일을 제거하면 된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김정수는 고통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 있으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말한다. 이 말을 철학적으로 살펴보면 고통과 자신을 분리해놓고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말이다. 고통에 몸부림치거나 매몰되다 보면 고통과 자신을 분리해볼 수 없으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없다. 고통에서 잠시 빠져나와 고통을 다양한 각도와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그 고통이 아프게 하는 정도를 낮출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고통 자체보다도 고통에 관한 표상으로 고통받는다고 했다. 즉, 동일한 사건도 이를 고통으로 인지하면 고통이 되는 것이고 고통으로 인지하지 않거나 당연한 삶의 통증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고통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마음가짐과 사고방식으로 고통의 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다. 우리가 고통의 순환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고통이 없어야 한다는 전제를 포기하거나 부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 비가 오는 사건이 생겼다고 하자. 여행 중 비가 온다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인생은 변수의 연속이니 비가 올 수도 있고 안 올 수도 있으며 비오는 것이 오히려 낭만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덜 겪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힘든 상황이 '어렵다'라고 생각하면 '부담'이 생기고 그 부담은 '불안'과 '부정적 감정'을 낳는다. 


이러한 사고방식이 '정신승리'라고 반론할 수 있지만 일어난 일에 대한 해석을 어떠한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그 사건으로 인한 고통이 달라질 정도로 의식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 우연이 겹쳐서 자신에게 불편한 결과가 초래되었지만 지나치게 고통이라는 딱지를 붙여버리는 순간, 우리는 어려워지고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정신의학과 심리학에서는 에너지의 여유가 생겨야 자신의 시야를 넓힐 수 있다고 말한다. 세상은 당신을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상처주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들도 자기방식대로 사느라 바쁘고 세상은 당신과 무관하게 바쁘게 돌아간다. 행복의 기준은 오롯이 나 스스로가 세우는 것이며 내 사고방식에 따라 행복과 고통이 결정된다. 신이 있어 그 신이 당신에게 행복을 줄 지 고통을 줄 지 하염없이 기다리거나 믿는 대신 스스로 어떻게 행복을 쌓아올릴지 어떻게 고통을 줄여나갈지 생각하며 산다면 행복을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고 나만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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