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여의도에는 빌라, 단독주택이 없을까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11

by 김지웅

서울을 오래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압구정에도, 잠실에도, 심지어 외곽의 신도시에도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빌라나 단독주택이 조금은 남아 있다.


그런데 여의도는 다르다. 직선으로 배열된 아파트 단지와 업무용 마천루 빌딩, 그리고 방송국과 증권가. 낮에는 직장인이 가득하고, 밤에는 불 꺼진 오피스가 남는다.


왜 여의도에서는 빌라와 단독주택을 볼 수 없을까.


애초에 자연발생 주거지가 아니었다

원래 여의도는 오랫동안 사람이 살만한 땅이 아니었다. 장마철이면 한강이 범람했고, 섬은 진흙과 모래가 뒤섞인 저지대였다. 군용 비행장이 넓게 자리했고, 말과 양 같은 가축을 방목하는 공간이 있을 뿐이고 잡초 투성이었다.


여의도에는 애초에 형성된 마을도, 민간인 소유 토지도 거의 없었다. 서울의 다른 지역처럼 골목이 먼저 생기고, 단독주택이 들어서고, 그 사이에 빌라가 끼어드는 식의 자연스러운 도시 성장 과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주거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방이 먼저였다 – 윤중제 120일

1960년대 후반, 서울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도시는 급속히 팽창했고, 대규모 택지 조성이 시급해졌다. 그때 눈에 들어온 땅이 여의도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의도는 쓸모없는 모래섬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 섬을 개발하려면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제방 공사였다.

윤중제 제방 공사는 이른바 돌격시장이라 불렸던 김현옥 시장의 진두지휘 아래 1968년 그해 여름 장마가 오기전 까지, 약 120일 만에 강행되었다. 우선 물을 막아야 했다. “일단 둑을 쌓고 보자”는 식의 속도전이었다. 제방이 완성되고 군 비행장이 이전한 뒤에야, 비로소 본격적인 택지 개발이 시작된다.


100% 계획도시

여의도 개발의 가장 큰 특징은 완전한 계획도시라는 점이다. 이곳은 기존 민가를 헐고 재개발한 곳이 아니다. 보상과 수용이 복잡하게 얽힌 구도심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구획을 나누고, 용도를 정하고, 기능을 배치했다. 국회를 비롯한 공공기관을 유치하고 금융·방송 기능을 집중시키는 한편, 주택용지와 업무용지를 명확히 분리했다.

주택용지는 민간 건설사에 매각되었다. 그리고 이때 건설사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투자 효율이었다.


건설사에게 빌라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여의도는 한강 한복판에 인위적으로 조성된, 완전히 새로운 맨땅이었다. 제방을 쌓고 기반시설을 깔고 택지를 조성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갔다.

그 비용을 지불하고 분양받은 건설사 입장에서 수익을 내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답은 명확했다. 고밀도, 대규모 아파트였다.


빌라나 단독주택은 용적률 활용 면에서 비효율적이다. 토지가격이 높고 기반시설 비용이 큰 곳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결국 여의도의 주거지는 대단지 아파트 중심으로 설계된다. 처음부터 빌라가 들어설 틈이 없었다.


서울의 신도심이 되려던 곳

당초 여의도는 단순한 주거지가 아니라 서울의 새로운 중심지로 구상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개발 방향은 조금씩 달라진다.

서울시는 부족한 재정 확보를 위해 택지 매각 중심의 토지개발에 무게를 두었고, 그 과정에서 기능적으로 업무·금융 기능이 강화되었다. 그 결과 여의도는 한국의 월가 같은 이미지로 자리 잡는다.

주거는 보조 기능이 되었고, 아파트는 그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형식이었다.


만약 옛 마을이 있었다면

만약 여의도에 오래된 마을이 있었더라면, 좁은 골목과 단독주택이 남아 있었다면, 재개발의 시간차 속에서 빌라가 들어섰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의도는 완전히 새로 그려진 도시였다. 백지 위에 직선으로 설계된 섬.

그래서 여의도에는 빌라와 단독주택이 없다.

아주 조금은 있을 수 있지만, 사실상 보기 어렵다.


서울은 여러 동네가 합쳐져 이루어진 도시지만, 그 동네들이 만들어진 방식은 제각각이다. 어떤 곳은 천천히 자라났고, 어떤 곳은 한 번에 설계되었다.

여의도는 후자다.


그래서 골목 대신 블록이 있고, 아담한 단층 단독주택 대신 직선으로 뻗은 대단지 아파트가 있다.

지금 여의도의 풍경은 이 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여의도 아파트 숲을 따라 걷는다는 것은, 어쩌면 서울이 필요에 따라 한 지역의 개발 방향을 틀며 써 내려간 거대한 연대기적 기억 위를 걷는 일과도 같다.

여의도는 서울이 스스로를 재설계한 첫 실험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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