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13
중랑구 면목동의 용마폭포공원은 원래 채석장이었다.
지금은 거대한 인공폭포가 쏟아지고, 시민들이 산책하는 공원이지만, 한때는 산을 폭파해 돌을 캐내던 산업 현장이었다.
겨울이면 빙벽등반장이 되고, 평소에는 휴식 공간이 된다.
산을 깎아낸 자리 위에 공원이 들어선 셈이다.
서울의 산에는 왜 절벽이 많을까
용마산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의 산을 자세히 보면 유난히 직벽이 많다. 인왕산, 낙산, 아차산, 우면산 곳곳에 ‘칼로 자른 듯한’ 절벽이 남아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은 오래전부터 돌을 캐던 도시였기 때문이다.
한양을 세우기 위해 산을 깎다
조선이 수도를 한양으로 옮기면서 성곽과 궁궐을 지어야 했다.
돌은 가까운 산에서 가져왔다. 지금 우리가 보는 도성 주변의 바위산들은 그때부터 이용되기 시작했다.
다만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통제했고, 범위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산이 깎이기 시작한 때
산이 크게 변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였다.
도로와 철도, 건물이 늘어나면서 돌 수요가 폭증했다. 민간 사업자들이 채석권을 얻어 다이너마이트로 산을 폭파했다.
오늘날까지 남은 거대한 수직 절벽은 그 시기의 흔적이다.
고도성장의 시대
한국전쟁 이후 복구와 개발이 이어지면서 채석은 다시 활발해졌다.
아파트와 도로를 짓기 위해 골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환경 훼손과 주민 민원이 커지면서 채석장은 하나둘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 공원과 녹지가 들어섰다.
용마폭포공원도 그렇게 탄생했다.
왜 하필 서울이었을까
서울은 산이 많고, 단단한 암반이 도심 가까이에 드러난 지형이다.
돌을 캐기 좋은 조건이었다.
한강이 흐르고, 산이 둘러싸고, 바위가 드러난 분지.
이 지형이 서울의 모습과 개발 방식을 함께 결정했다.
오늘날 서울은 20억 년 된 편마암 위에, 2억 년 전 화강암이 얹히고, 그 위에 한강의 퇴적층이 덧씌워진 도시다.
서울의 화강암과 편마암은 절리가 발달하고 박리가 쉬운 특성이 있다.
자연 절벽이 많고, 채석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다.
도심 가까이에서 석재를 확보할 수 있었던 지질 조건.
그것이 서울에 채석장이 많았던 근본적인 이유다.
서울은 ‘돌 위의 도시’다
서울은 단순히 건물이 빽빽한 도시가 아니다.
산을 깎아 돌을 캐고, 그 돌로 다시 도시를 세웠다.
오늘 우리가 걷는 공원과 도로, 아파트 단지는
어쩌면 누군가가 산을 폭파한 자리 위에 놓여 있다.
서울은 그렇게, 산을 깎아 만든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