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산동네는 어떻게 사라지는가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19

by 김지웅

한강과 남산 사이 동네 한남동.

한남동 언덕을 올라가다 보면

뜻밖의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서울 중앙성원.

서울 한복판,

그것도 남산과 한강 사이의 경사면 위에

이슬람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오래전, 한 외국인 노동자를 태운 적이 있다.

그는 경기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올라왔다고 했다.

목적지는 단 하나였다.

이 사원.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그는 적지 않은 택시비를 아무렇지 않게 지불했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그들에게 반드시 와야 하는 장소구나.

한남동은 원래부터 그런 동네였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모여드는 곳.


군대가 먼저 자리 잡은 땅

용산과 한남동 일대의 근대적 출발은 군사적이었다.

임오군란 이후 청군이 주둔했고,

이후 일본군이 들어왔다.

해방 이후에는 주한미군이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완만한 구릉과 한강이 맞닿은 지형.

대규모 병력을 수용하고 통제하기에 적합한 조건.

도시는 이렇게

권력과 군대의 필요에 의해 먼저 형태가 결정된다.


그 바깥에 형성된 또 다른 세계

하지만 군대가 차지한 공간 바깥에는

항상 또 다른 도시가 만들어진다.


한남동의 산비탈에는

값싼 땅을 찾아온 서민들이 모여들었고,

용산 기지와 맞닿아 있다는 이유로

외국인 거주자들도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왔다.


그래서 이곳은

서울에서 가장 이질적인 풍경이 공존하는

동네가 된다.

언덕 위의 사원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자리 잡았다.


같은 동네, 전혀 다른 삶

한남동의 풍경은 극단적으로 나뉜다.

한쪽에는 유엔빌리지,한남더힐,나인원 한남 같은

고급 주거지가 자리 잡았고,

다른 한쪽에는 산동네가 이어져 있었다.


같은 동네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가 공존했다.

이 구조는 우연이 아니다.

도시는 언제나 가치가 높은 공간과 낮은 공간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그리고 지금, 사라지는 쪽

지금 한남동에서는 철거가 한창이다.

한남동과 보광동, 이태원동 일대는

뉴타운 사업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2003년 지정된 한남뉴타운은

2029년경, 1만 2천 세대 이상의 대규모 주거지로

탈바꿈할 예정이다.

앞으로 이곳은 고급 아파트로 채워질 것이다.


이미 나인원 한남 같은 공간이 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상계동, 금호동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공간은 개선되지만, 그 안의 사람은 남지 않는다.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이 동네에는 아직 사라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

언덕 위의 사원처럼,

오래전부터 이곳을 필요로 했던 사람들의 흔적이다.


하지만 그 아래의 풍경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오래된 집들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더 비싼 집이 들어선다.


한남동이 남기는 질문

다시 떠올려본다.

경기도 광주에서 굳이 이곳까지 올라와

기도를 마치고 돌아가던 그 사람을.

그에게 이 동네는 단순한 주택가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이곳에 살던 사람들에게

한남동은 어떤 장소였을까.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더 높은 건물이 들어설 것이다.

그리고 그 건물은

더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일 것이다.


한남동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곳을 필요로 하던 사람들이

먼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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