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뒤의 형태가 비대칭인 한강철교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20

by 김지웅

​올림픽대로를 달리다 노량진 부근을 지날 때면 시선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다. 바로 한강 위를 가로지르는 한강철교의 모양이다.


자세히 보면 흥미로운 점이 하나 발견된다. 노량진 쪽은 단단한 철갑을 두른 듯한 트러스(Truss) 구조인 반면, 용산 쪽은 매끈하고 단순한 강교(Steel Girder) 형태다.


​한 몸이면서 두 얼굴을 가진 다리. 왜 한강철교는 중간에 형태가 바뀐 것일까?


​야생의 강, 한강을 마주하다

​오늘날 우리에게 한강은 평화로운 시민공원이지만, 과거의 한강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다. 세계적인 대도시를 가로지르는 강 중 한강처럼 폭이 넓고 수위 변화가 극심한 강은 드물다.


​강의 최소 유량과 최대 유량의 비율을 나타내는 '하상계수'를 보면 그 차이가 명확하다. 파리의 세느강이 1:34, 런던의 템즈강이 1:8인 것에 비해, 상류에 소양강댐, 충주댐이 건설되기 전, 한강의 하상계수는 무려 1:390에 달했다.


쉽게 이야기하면, 평소 흐르는 물의 양이 1이라면, 홍수때에는 360배의 물이 덮친다는 의미다.

여름이면 폭발적으로 불어나는 물길이 지형을 통째로 바꿔버릴 만큼 위력적이었다.


​사라진 섬과 물길의 흔적

​1925년 을축년 대홍수는 한강의 지도를 바꿔놓은 결정적 사건이었다. 당시 잠실섬 전체가 물에 잠기며 강줄기의 본류와 지류가 바뀌었다.


지금 우리가 산책을 즐기는 석촌호수가 사실은 과거 한강의 본류였던 송파강의 마지막 흔적이라는 사실은, 이 강이 얼마나 역동적으로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제방이 만든 도시의 경계

​1960~70년대 서울의 팽창은 곧 '치수(治水)'와의 전쟁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홍수를 막기 위해 강변에 거대한 성벽, 제방을 쌓기 시작했다. 단 4개월 만에 완공된 여의도 윤중제와 이촌동 제방은 각각 지금의 여의도와 강변북로의 토대가 되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이 과정에서 서울시가 '땅의 경제학'을 깨달았다는 사실이다.

제방 안쪽을 매립해 만든 새 땅을 팔아 도시 개발 재원을 마련하는 방식. 지금의 강남과 압구정은 그렇게 강을 밀어낸 자리에 세워진 계획의 산물이다.


​사라진 모래사장, 기록이 된 다리

​제방이 들어서기 전, 한강은 거대한 모래의 바다였다. 이촌동의 넓은 모래톱은 시민들의 피서지이자 선거 유세장, 때로는 서민들의 치열한 삶터였다.

하지만 1960년대 개발 열풍 속에 모래는 건축 자재로 팔려 나갔고, 1968년 이후 한강의 백사장은 대부분 지도에서 사라졌다.


​한강철교의 비대칭 구조는 바로 그 '사라진 풍경'의 기록이다.

물살이 거셌던 노량진 쪽엔 단단한 트러스를, 모래톱이 넓어 물 흐름이 약했던 용산 쪽엔 단순한 강교를 놓았던 설계. 비대칭의 철교는 그 자리에 모래사장이 있었음을 묵묵히 증언하는 유일한 흔적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4개의 철교중 1994년 건설된 네번째 철교가 이미 모래톱이 사라진 상태임에도, 일제강점기 시절 건설된 다른 세개의 철교와 마찬가지로 초반은 트러스 구조, 나머지는 단순강교 형태로 만들어 졌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설계자들이 기존 철교와의 균형, 조화를 고려했던 것이 아닌가 보여진다.

​다리가 품은 서울의 시간들

​한강철교의 이상한 모습은 설계 오류가 아니다. 그것은 거친 물길을 삶의 터전으로 바꾸기 위해 분투했던 서울의 시간들이 아로새겨진 역사의 흉터이자 훈장이다.

오늘도 올림픽대로를 달리며 한강철교의 비대칭을 지난다.

매일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도, 우리가 딛고 선 도시의 치열한 생존 기록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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