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준원점, 인천에 있는 서울의 기준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21

by 김지웅


사라지는 다리, 반복되는 풍경

여름철 많은 비가 내리면

서울의 풍경은 일정한 순서를 따라 변한다.


먼저, 가장 저지대 한강 산책로가 잠기고,

그 다음 강변 도로 통제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한강 다리 하나가 물속으로 사라진다.


잠수교.

이 다리는 한강 수위가 약 6.2m를 넘으면 통제되고

6.5m 안팎이 되면 완전히 잠긴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다.

거의 매년 반복된다.


침수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다

사람들은 말한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잠겼다.”

하지만 서울의 침수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같은 지역이 반복적으로 잠긴다.


특히

강남구와

한강변 간선도로 일대.

이곳들은 '낮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은 생각보다 낮은 도시다

서울의 높이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해발’이라는 말을 쓴다.

그 기준은 바다,

정확히는 평균 해수면이다.

하지만 실제 기준은

눈앞의 바다가 아니다.


인하대학교 교정에 있는 수준원점. 26.6871m

즉, 적어도 인하대학교 땅바닥이 대략 해발 27미터라는 의미다


이 한 점에서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도로, 철도, 건물 높이가 계산된다.

이 기준으로 측정해 보면

한강 수면은 대략 해발 10m 안팎.

주변 강변 지역과 강남 저지대는 10~15m,

여의도도 10m 남짓.


반면, 광화문 일대는 20m,

북쪽으로 갈수록 30m 이상으로 올라간다.

숫자로 보면 작은 차이지만

이 차이가 도시의 경계를 만든다.


물은 낮은 곳으로 모인다

비는 어디에나 내린다.

그러나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 모인다.

그래서 서울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것보다

어디가 낮은지가 더 중요하다.


2022년 여름, 기록적인 폭우 속에서

뜻밖에 강남이 잠겼다.

그러나, 이건 엄밀히 따지자면 예외적인 아니다.

지형이 만든 결과다.


도시는 이미 알고 있었다

흥미로운 점은

결과를 도시가 이미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강남 사거리, 잠수교 침수도,


잠수교에 국한시켜 이야기하자면. 이 다리는

처음부터 ‘잠기도록’ 설계된 다리다.

전시 군사적 목적이외에

홍수 때 물의 흐름을 막지 않기 위해

일부러 낮게 만들었다.


즉, 잠수교가 잠긴다는 것은

도시가 무너지는 신호가 아니라

물이 제자리를 찾고 있다는 신호였다.


기준이 도시를 만든다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은

결국 하나다.

높이의 기준.

인하대학교 수준원점에서 시작된

그 작은 기준점 하나다.


도로의 높이를 정하고

건물의 위치를 만들고

홍수의 경로를 결정한다.

보이지 않는 기준이

도시의 형태를 만든다.


같은 산, 다른 높이

이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북한은 원산 앞바다를,

중국은 텐진 앞바다를 수준원점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백두산의 높이도

2m, 3m 조금씩 다르게 기록된다.

우리가 믿는 ‘숫자’는

결국 선택된 기준일 뿐이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

서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거리를 이동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늘

보이지 않는 기준 위를 걷는다.


해발 10m와 30m 사이,

그 미묘한 차이 위에서

어떤 곳은 잠기고

어떤 곳은 남는다.


그리고 그 모든 차이는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인천의 한 점에서 사유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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