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18
서울 동작동의 국립서울현충원을 걷다 보면 사뭇 낯선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이 잠든 현대적 묘역 한가운데, 고즈넉한 조선시대 왕실 무덤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국립묘지 안에 조선 후궁의 묘라니. 이 무덤은 도대체 어떤 연유로 이곳에 남겨진 걸까.
왕조의 흐름을 바꾼 후궁
이 무덤의 주인은 조선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숙용(淑容)의 첩지를 받고 덕흥군을 비롯한 자식들을 낳았다.
생전에는 그리 두드러진 권력가가 아니었지만, 사후에 그녀의 가문은 조선의 흐름을 바꾸게된다.
중종 이후 왕위는 인종과 명종으로 이어졌지만, 두 왕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논쟁끝에 왕통은 창빈 안씨의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집안으로 넘어갔고, 그렇게 왕위에 오른 인물이 바로 선조다.
선조 이후의 모든 조선 왕은 결국 그녀의 후손이다. 조용히 살다 간 한 후궁의 자리가, 결과적으로 왕조의 계보를 바꾼 기점이 된 셈이다.
수백 년 전부터 점지된 명당, '동작릉'
창빈 안씨 무덤은 왕릉이 아님에도 오래전부터 인근 백성들 사이에 ‘동작릉’이라 불렸다 한다. 풍수지리적으로도 손꼽히는 명당으로 알려져 있었다.
훗날 숙종 때에는 후궁의 묘로는 드물게 신도비까지 세워질 정도로 왕실의 각별한 예우를 받았다.
즉, 이 무덤은 우연히 남겨진 유산이 아니다. 선조이후, 수백 년 전부터 조선왕실이 관리하고 의미를 부여해 온, 역사적 무게가 실린 공간이었다.
대통령 들과 나란히 누운 묘역의 풍경
흥미로운 점은 이 무덤의 위치다. 창빈 안씨의 묘역은 오늘날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 묘역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잠든 공간 바로 곁이다.
왕조 시대의 '왕의 할머니가 된 후궁'과 공화국 시대의 '국가 수반'이 같은 능선 위에 이웃하고 있는 모습은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전쟁이 바꾼 공간의 운명
조용하던 이 언덕의 운명이 바뀐 것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였다.
전사자가 급격히 늘어나자 국가는 이들을 한곳에 모실 대규모 묘역을 찾아야만 했다. 국방부는 국군묘지 부지를 물색했고, 그 결과 동작동 일대가 최종 후보지로 선택되었다. 선정 이유는 명확했다. 참배하고 추모하는데 있어 서울에서의 접근성이 좋았고, 주변 지형이 완만해 대규모 묘역 조성이 용이했다.
무엇보다 상당한 면적이 이미 군부대 훈련 부지로 확보되어 있었고, 한국전쟁 초반 전사장병들의 가매장지가 가까이 있었던 점도 고려된 듯 하다. 이 계획은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최종 확정되었다.
그렇게 조선 왕실의 명당은, 대한민국 호국영령과 국가 지도자들의 안식처로 다시 쓰이게 된다.
한 공간에 겹쳐진 시간의 층
결국 대한민국의 국립묘지는 조선시대 왕실 묘역이 있는 자리를 중심으로 조성되었다. 이는 의도적으로 두 공간을 합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왕조의 시간' 위에 '현대의 시간'이 덧씌워진 결과다.
오늘날 이곳에는 조선의 후궁, 한국전쟁과 월남전의 전사자, 애국지사, 그리고 대한민국 대통령들이 한 울타리안에 잠들어 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이 죽음이라는 이름 아래 한 공간을 공유하는 셈이다.
서울을 긴 시간 운전해서 다니다 보면, 이렇게 하나의 장소에 여러 시대가 층층이 쌓여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국립현충원 한복판의 이 무덤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품고 있는 깊고도 묵직한 '시간의 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