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대한제국의 국립현충원, 장충단

서울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17

by 김지웅


​오늘날 우리는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동작구의 국립현충원을 찾는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대한제국 시기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던 국가적 성지가 서울 남산 기슭에 있었다. 바로 지금의 '장충단공원' 일대다.


​이곳의 시계는 대한제국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900년, 고종 황제는 남산 자락에 '장충단(奬忠壇)'이라는 제단과 사당을 세우도록 명했다. 그 시작은 일본에 의해 저질러진 비극적인 '을미사변(1895년)'이었다. 당시 명성황후를 지키다 일본군에 맞서 장렬히 전사한 홍계훈 장군을 비롯한 군인들의 넋을 기리고, 나라를 향한 충성심을 북돋우기 위한 공간이었다.


​남산 자락을 호령하던 거대한 추모의 공간

​당시의 장충단은 지금 우리가 아는 소담한 공원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양도성 남산 자락의 병영을 헐어내고 그 자리에 사당과 제단을 세운, 엄숙하고도 거대한 국가적 성역이었다.

이곳에서 국가가 주관한 제사와 추모행사가 열렸다.


​현재의 장충단공원은 물론, 인근의 신라호텔과 자유센터 일대까지 아우르는 광활한 영역이 모두 장충단의 품 안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평온한 산책로가 된 이곳에서 당시의 위용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벚꽃 아래 가려진 '역사 지우기'의 흔적

​국권을 침탈한 일제는 조선의 민족적 상징이었던 장충단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이곳을 훼손하기 시작했다.


군인들의 넋이 깃든 사당과 제단을 헐어버린 자리에는 일본의 상징인 벚꽃을 심고, '일본식 정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심지어 만주 침략을 기념하는 일본군 동상까지 세우며 공간이 가진 본래의 의미를 완전히 뒤틀어 놓았다.


​만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중근 의사에게 처단당한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 '박문사'를 바로 이곳에 세웠다. 대한제국의 충신들을 추모하던 성지 위에 침략의 원흉을 기리는 절을 올린 셈이니, 이보다 더 노골적인 '역사 지우기'는 없었다.


​우리가 걷는 길 위, 겹겹이 쌓인 기억들

​그렇게 장충단의 원래 얼굴은 긴 세월 속에 흐릿해졌다. 이제 장충단공원은 시민들이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평온한 휴식처가 되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풍경 아래에는 대한제국이 세운 뜨거웠던 추모의 기억과, 이를 덮으려 했던 일제의 서늘한 침략사가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자세히 들여다본다는 것은, 이처럼 한 장소에 머물다 간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들을 하나씩 들추어보는 일일지도 모른다.

오늘 무심코 지나친 그 공원 길 위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시간의 문장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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